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안와르 알샴마리 보좌관, 케빈 컬른 킹압둘라 과학기술대학(KAUST) 부총장과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 임직원 70여명이 한데 모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날 사우디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사우디 투자부를 소개하고 현지에 진출한 스타트업들을 위한 지원 정책을 소개하기 위한 ‘스타트업 밋업(meetup)’ 행사를 개최했다. 사우디 측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현지의 딥테크 스타트업 투자 기관 관계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사우디의 딥테크 투자 펀드도 소개했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임정욱 중소벤처기업부 창업혁신실장은 “주말을 빼면 참가 신청을 받은 기간이 이틀에 불과했지만 140여 개의 스타트업이 참여 의향을 밝혔다”며 “공간이 좁아 절반 정도를 추려내야 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스마트팜·전기차 등 다양한 업종의 스타트업들은 사우디 측에 어떻게 하면 현지 진출을 할 수 있는지, 투자는 어떻게 유치할 수 있는지, 현지 규제는 어떻게 되는지 등 다양한 내용을 질문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약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사우디 관계자와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나눴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의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비반 2023'의 스타트업 경쟁 부문에서 1등을 수상한 한국의 드론 스타트업 엔젤스윙. /중소벤처기업부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한국을 방한하는 등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경제 협력 논의가 물꼬를 트면서, 한국 스타트업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석유 산업 외에 다양한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한국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도 오일 머니로 대표되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사우디는 유력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사우디 국부펀드(PIF) 관계자들을 서울로 초청했던 구본희 서울투자청장은 “K-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이 세련되고 트렌디하다는 이미지가 있고, 투자하는 데 심리적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덜하다”며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사우디의 정치적 우방이긴 하지만 계속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인권 문제 관련 트러블에서 오는 저항감이 있는데, 한국은 사우디와 역사적·정치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별로 없고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같다면 한국 기업들도 충분히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지난해부터 계속 한국 스타트업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 방한 당시 동행한 칼리드 왈팔레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당시 한국에서 개최된 스타트업 행사 ‘컴업 2022′에 이영 중기부 장관과 함께 직접 면담을 했다. 사우디 투자부는 지난달 사우디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비반(BIBAN)에 이영 장관과 한국 스타트업들을 직접 초청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 스타트업 10여 곳이 비반에 참석했고, 전세계 500개 스타트업의 경쟁에서 한국 스타트업 엔젤스윙과 오톰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이들 스타트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드론으로 영상을 촬영한 후 이를 측량 데이터로 바꾸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엔젤스윙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를 유력한 해외 진출 시장 후보로 보고 있다. 박원녕 엔젤스윙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원래는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고려하던 차 지난해 11월 국토부와 함께 처음으로 사우디를 방문해 시장의 가능성을 알게 됐고, BIBAN 이후 사우디 현지 투자 기관과 투자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휴대용 엑스레이 검사 기계를 개발한 오톰의 오준호 대표는 “한국에서는 의료 기기 관련 규제가 굉장히 엄격해, 규제자유특구에서 겨우 제품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보건복지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워 이미 판매 허가도 얻어놓았고, 비반 행사에서 입상한 후 사우디 투자부와 MOU도 체결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우디는 국내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는 주요 조건으로 사우디 현지에 직접 진출하거나 사우디 내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메이드 인 사우디’를 내걸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는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 가깝지만, 이미 사우디와 투자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있다. 지난달 비반 행사에 참여한 악성코드 차단 전문 스타트업 시큐레터는 2019년에 이미 사우디 국책투자기관 RVC의 투자를 유치한 상황이다. 오는 5월부터는 사우디 현지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이메일 보안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협의했고, 사우디 투자부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