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의 보안 기업 에스원. 영상인식 LAB(연구소) 실험실이 있는 지하 1층 한편엔 컨테이너와 비슷한 실드룸(전자파 차단 연구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창 하나 없는 실드룸 안에서 문을 닫자 내·외부 조명이 완전히 차단돼 깜깜한 암실(暗室)이 만들어졌다. 한 발짝 앞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모니터 앞에 마스크를 쓴 채 섰다.

곧바로 모니터에 장착된 LED 조명이 깜빡이더니 파란색 불빛과 함께 ‘인식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직원 얼굴을 분석해 신원 확인을 마쳤다는 신호였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마스크까지 썼지만 정확도는 99%다. 얼굴 인식 기술에서 팬데믹 영향으로 피할 수 없었던 ‘마스크’라는 숙제가 전화위복으로 기술력 향상의 계기가 됐다.

이동성 에스원 연구팀장(상무)은 “코로나 초기 마스크가 얼굴 인식 기술에 큰 장벽이었지만, 빠르게 한계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코로나가 얼굴 인식 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7일 서울 중구 에스원 영상인식연구소 내 실드룸에서 조명을 완전히 차단한 채 얼굴 인식 테스트를 진행하는 모습. 에스원은 기술 고도화를 통해 어두운 환경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얼굴 인식 성공률을 99%까지 끌어올렸다. /고운호 기자

◇코로나가 전화위복? 마스크 쓴 얼굴까지 인식하는 기술력 향상

얼굴 인식 기술은 카메라로 촬영한 얼굴에서 눈매, 코, 입가 등 이목구비를 중심으로 사람마다 특징점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출입 관리 영역에서 얼굴 인식 기술을 개발해온 에스원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3년여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은 전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비접촉 인증 시스템’이 주목받고, 수요 폭증의 계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의 절반 가까이 가리는 마스크가 큰 변수로 등장했다.

하지만 에스원은 마스크로 생기는 얼굴 인식 제약을 얼굴 특징점 숫자를 50여 곳에서 100여 곳으로 늘리고,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눈·눈썹·눈가·귀 주변 부위 특징에 높은 인식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또 얼굴 데이터에 판매 중인 마스크 30여 종 디자인을 각각 적용해 데이터화하고 인식 테스트를 추가로 진행했다. 얼굴 인식 연구를 담당하는 조현수 파트장은 “마스크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얼굴 인식 시스템을 고도화한 결과 특징점 분석 정확도가 2배 이상 향상됐다”고 했다.

팬데믹 기간 향상된 얼굴 인식 기술은 에스원이 최근 새로 선보인 ‘얼굴 인식 리더 2.0′에 반영됐다. 인식 속도는 1초에서 0.6초가 돼 절반 가까이로 줄었고, 리더기가 관리할 수 있는 출입 인원도 3000명에서 5만명으로 늘었다. 일반 얼굴 인식 성공률은 99.5%, 마스크 착용 인식 성공률은 99% 수준이다.

에스원은 얼굴 인식 기술에 기반을 둔 ‘수술실 CC(폐쇄회로)TV 설루션’도 개발 중이다. 무자격자 대리 수술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오는 9월부터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됐는데 동영상 분석에 얼굴 인식 기술이 필수기 때문이다. 길게 10시간 넘는 영상에 나오는 수술실 인물의 동선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데 딥러닝(기계학습)에 기반을 둔 인물 검출 모델을 활용하면 특정 인물의 수술실 체류 시간, 이동 행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 데이터 풍부한 中 유리하지만, 韓 기업도 성과

AI(인공지능) 얼굴 인식 기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전사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스파이를 잡아내는 데도 사용되기도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비접촉식 생체 인식 기술 시장이 2027년 300억달러(약 39조6000억원)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얼굴 인식 기술 시장은 연평균 15.4% 성장해 2028년 121억1000만달러(약 16조원)로 전망한다.

글로벌 얼굴 인식 기술 시장은 정부 지원 아래 15억 인구의 얼굴 정보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중국이 이끌고 있지만, 최근 에스원,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국내 기업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가 주관하는 얼굴 인식 평가에서 5위 안에 들며 성과를 내고 있다. 이동성 상무는 “얼굴 인식 기술이 상용화돼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