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켐토피아 사무실에 들어서자 여러 대의 드론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박상희(51) 켐토피아 대표는 한 드론을 가리키며 “산업단지나 공장 위를 날며 대기 질을 측정하는 드론”이라며 “미세 먼지가 얼마나 심한지, 대기 중 악취는 없는지를 고도별로 실시간 측정할 수 있어 건물 옥상의 고정식 센서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말했다.

드론 제조사 같은 사무실 모습과 달리, 켐토피아는 안전·환경·보건 분야의 컨설팅 시장을 개척해온 기업이다. 2002년 위험한 화학물질에 대한 컨설팅을 시작한 뒤 2020년부터 드론과 로봇을 활용한 산업안전과 환경관리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중대재해법 시행과 맞물려 체계적인 안전 관리의 중요성이 더 커지면서 켐토피아의 고객사는 작년 기준 국내외 942곳으로, 매출 215억원을 달성했다. 고객사인 기업들의 재가입률은 95%에 달한다.

켐토피아가 자체 개발한 드론들 사이에 선 박상희 대표. 그는 "산업 안전이나 작업자 건강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고가 터진 후에야 조치가 이루어지고, 일회성인 경우가 많다"며 "체계적인 안전 관리와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안전한 화학물질 제작·수입 돕겠다”

화학 석사, 보건학 박사 출신인 박 대표는 1997년부터 국립환경과학원에서 화학물질 심사위원으로 일하다 기업가로 변신했다. “A 화학물질을 사용해도 되느냐” “B 화학물질 관련한 한국의 규제가 어떻게 되느냐” 같은 기업들의 문의 전화가 단 하루도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박 대표는 “해외에는 ‘화학물질 전문가가 한 기업에도 수십 명씩 있는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며 “내 지식으로 기업들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02년 모친 집 방 한 칸을 빌려 사무실을 차렸다. 케미컬과 유토피아를 합친 켐토피아로 사명을 정하고, 기업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나 제품에 대해 “이 물질은 독성이 있다” “이 물질은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이드를 해줬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복잡한 규제를 준수할 수 있게 하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대표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일하던 시절 그에게 문의 전화를 했던 일본 제이에스알 등 해외 기업들도 그의 창업 소식을 반기며 고객이 됐다.

◇첨단 기술 만난 안전 관리 시스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2015년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관련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켐토피아를 찾는 기업들은 더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박 대표는 기존 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업체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에 뛰어들었다. 드론과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위험한 산업 현장을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제 켐토피아는 드론 제작뿐 아니라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한 헬멧, 작업자의 실시간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같은 안전 장비도 만든다.

박 대표는 “요즘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산업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주 52시간제’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교육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안전 관리 인력을 더 뽑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드론이나 첨단 기술을 통해 기업들이 안전 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누구도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지 않는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