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상승으로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경유 가격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5일 오후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날보다 리터(L)당 3.1원 오른 2029.3원, 경유는 2.7원 오른 2021.1원을 기록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경유를 L당 각각 2190원과 2180원에 팔고 있다. /박상훈 기자

지난 3일(현지 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7% 오른 배럴당 118.9달러, 같은 날 브렌트유는 1.8% 상승한 119.7달러로 거래를 마치며 다시 120달러 선에 바짝 다가섰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오펙 플러스)가 원유 증산에 합의했지만, 대(對)러시아 제재에 따른 공급 감소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산유국 증산도 유가 오름세를 진정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급등했던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12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보다 더 큰 에너지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온다.

◇공급 우려 커진 세계 석유시장

최근 에너지 위기는 과거 오일쇼크와 달리 천연가스가 위기를 촉발한 탓에 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석유 공급을 줄였던 당시에는 천연가스나 석탄 등 대체재를 활용해 공급 부족을 다소 완화할 수 있었지만, 최근 위기에는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석유·석탄 가격까지 가파르게 상승시키면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석유 위기, 가스 위기, 전력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며 “이번 위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위기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지금까지 세계 경제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버텨왔지만,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수출에 대한 제재를 이어갈 경우 가격은 지속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형건 강원대 교수는 “EU(유럽연합)가 공식적으로 연말까지 러시아산의 90%를 줄이겠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일부 틈새로 흘러나오던 물량까지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일을 넘기며 장기화하면서 국제 유가는 올 초 예상했던 150달러를 웃도는 초고유가가 더는 먼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석유 재고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애초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100~150달러 범위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봤는데 이 같은 흐름이 연중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BOA(뱅크오브아메리카)가 지난달 말 “러시아 제재가 유가를 150달러 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한 데 이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2일 “유가는 틀림없이 오른다”며 “150~1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수요 폭발…중국 봉쇄 해제도 영향

코로나 엔데믹(풍토병)을 맞아 제품 수요가 폭발하고, 최근 글로벌 수요를 눌러오던 중국의 대도시 봉쇄도 이달 들어 완화되면서 공급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유가 강세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EIA(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미국 휘발유 평균 소매 가격은 갤런(1갤런은 약 3.785L)당 1년 전보다 50% 이상 급등한 4.62달러(약 5790원)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가까지 치솟았지만, 코로나로 지난 몇 년간 억눌렸던 이동 수요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폭발하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란 핵협정이 여전히 공전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간 회담도 7월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지며, 공급 측면에서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여름을 넘기고, 제재가 천연가스로 확대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던 천연가스까지 끊어지면 에너지 부족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LNG(액화천연가스) 공급이 줄어들며 올겨울에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량이 없어서 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며 “에너지 위기 국면을 맞아 각국이 탄소 중립 속도 조절을 선언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