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제3회 혁신형 SMR 국회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한수원 제공

‘일하는 직원이 대우받는 원칙’,’연공서열주의 타파’. 지난 24일 한국수력원자력이 ‘2022년 상반기 특별승격 시행 알림’이라는 제목으로 공지한 인사 원칙입니다.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을 우대하고, 경력이나 나이보다는 능력을 중시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라는 말로 비판받는 공기업이 민간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인사 정책을 펴는 것은 박수받을 일입니다.

그런데 한수원의 이번 특별 승진을 두고서는 뒷말이 많습니다. 바로 해당 인사를 주도하는 CEO(최고경영자) 때문입니다. 현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2018년 4월 사장에 오른 인물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을 빚다 물러난 전임 이관섭 사장의 후임입니다. 정 사장은 지난해 4월 3년 임기가 끝난 데 이어 1년 연임해 올 4월 임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지만 1년 연임이 가능한 규정에 따라 문재인 정부 막판, 연임을 추진하다가 이른바 ‘연임 알박기’ 논란이 확산하며 낙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임 사장 선임 때까지 ‘임시로’ 사장 자리를 지키는 정 사장이 퇴임을 눈앞에 두고 인사권을 행사하려고 하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난주 회의석상에서 정 사장이 “오는 6월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설마’하던 한수원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날 승진 인사 시행 계획이 확정되자 ‘역시’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탈원전 대못으로 꼽히는 ‘월성 1호기 경제성조작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건 윤석열 정부에서 한수원 사장을 맡는 것도 아이러니한데 인사까지 한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특히 한수원이 이번 인사에서 내세운 ‘승격 소요연수 제외’, ‘직군 통합’과 같은 원칙을 두고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상위 직급으로 승진할 때는 4~6년씩 필수 연한을 채워야 했지만 이번에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직군별로 나눠서 뽑는 대신 성과가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겠다고 했는데 이같이 기존 요건을 배제하는 게 결국 ‘내 사람’을 승진시키기 위한 포장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번 인사에서 승진 대상은 처·실장급 3명, 부장급 7명 등 총 10명입니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수원 정규직 1만2650여 명 중 처·실장급은 107명, 부장급은 701명입니다. 부장급이 되려고 해도 본래는 차장을 달고 6년이 지나야 해 적어도 15년차는 돼야 하고, 처·실장급은 입사 20년이 넘은 50대 쯤 돼야 다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퇴임하는 그날까지 사장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아닙니다. 이번 인사를 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CEO”라는 평가가 나올지, “나갈 때까지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커질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