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1분기에 6조원 가까운 영업 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상장사 사상 최악의 영업 손실을 낸 작년 한 해 영업 손실과 맞먹는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계획보다 원전 가동이 줄고, LNG(액화천연가스)·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게 직접적 원인이다. 한전은 지금도 전기를 팔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올해 영업 손실이 20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작년 한 해 손실과 맞먹는 1분기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의 1분기 영업 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은 5조700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2021년 한 해 영업 손실 5조8601억원을 기록했다. IFRS(국제 회계기준)로 회계기준이 바뀐 2011년 이후 국내 상장사 중 최대 영업 손실이었다. 근데 올해는 한 분기 만에 작년 한 해와 맞먹는 규모의 영업 손실을 낼 판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한빛 4호기 장기 정비, 신한울 1·2호기 상업가동 지연 등으로 LNG 발전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1분기 내내 높은 수준을 보인 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LNG 발전소 가동이 확대되면서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구매할 때 단가를 결정하는 계통한계가격(SMP)은 올 2~3월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90원대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반면 한전이 가정과 공장 등 소비자에게 전기를 팔 때 적용하는 판매 단가는 115원 수준이다. 결국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실이 쌓이는 것이다. 지난 2월 한전은 전력 구매에 7조5825억원을 썼지만, 전기를 팔아 벌어들인 돈은 5조4783억원에 그쳤다. 1분기 전기 요금은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kWh당 3원을 올려야 했지만, 정부가 물가를 이유로 동결한 탓에 적자 폭은 더 커졌다.

월성 1호기, 한빛 4호기 등이 과거 계획대로 전력 생산에 기여했다면 적자 규모를 다소 줄일 수 있었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멈춰 서거나 상업운전이 미뤄지면서 타격은 더 컸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월성 1호기 등 원전 4기가 1분기에 85% 가동률로 운전했다고 가정했을 경우 LNG 발전보다 약 1조3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기 ‘외상 거래’까지 추진

실적이 고꾸라지며 자금난이 닥치자 한전은 이른바 ‘급전’을 당기고, ‘외상 거래’까지 추진하고 있다. 올 들어 이날까지 한전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1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1년 동안 발행한 규모(11조7700억원)를 넘었다. 2020년까지 거의 없던 만기 1년 미만 단기 회사채도 지난해 1조34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3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한전은 매달 4차례 발전 자회사에 지급하던 전력 구매 대금을 5월부턴 한 차례 미룰 수 있도록 규칙까지 바꾼다. 대금 지급을 못 해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사태를 방지하고, 이자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한전이 매달 발전 자회사에 지급하는 대금 규모는 4조원을 넘는다.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가 안전과 직결되는 송배전 설비에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는커녕 당장 필요한 전력망 정비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전기 요금 인상을 미루고, 발전소 건설을 억제한 결과 2011년 9·15 순환 정전이 일어났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안팎으로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전기 요금 현실화와 전력 수요 조절, 원전을 통한 전력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