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원전을 더 늘리지 않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가 구체적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원전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자력 업계에선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두고 5년간 변죽만 울리고 허송세월한 정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을 가동한 뒤 나오는 폐연료봉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옷, 장갑 등 방사성 양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북 경주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마련돼 2010년부터 가동에 들어갔지만, 사용후 핵연료는 여전히 원전 내에 임시저장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원전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 저장하고 있던 수조의 포화 시점이 10년 안팎으로 다가오자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0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2016년 7월 정부는 공론화위 권고를 바탕으로 부지 선정, 중간저장시설 건설을 거쳐 2051년 영구처분장을 완공하는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하지만 탈원전을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앞선 정부 때 나온 공론화위 권고가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등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재검토를 추진했다. 2018년 5월 ‘재검토 준비단’을 만들어 1년을 끌었고, 2019년 5월 ‘재검토위’가 출범했다. 재검토위는 지난해 4월 권고안을 내놨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12월 2차 기본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5년 가까이 끌어 내놓은 기본계획이 박근혜 정부 당시 발표한 1차 기본계획과 판박이여서 원전 업계에선 “한시가 급한데 5년간 공회전만 한 꼴이다” “부지 선정 등 골치 아픈 문제를 다음 정부로 미뤘다”는 비판이 컸다.

원전 임시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가동 중단, 보관 방식 개선, 앞으로 원전 폐쇄 등을 반영해 고리·한빛 원전은 2031년, 한울원전은 2032년 도래한다. 5년 내내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시간에 쫓긴 정부·여당은 원전 부지에 별도 설비를 갖추는 임시방편을 대책으로 내놨다. 이에 대해 원전 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는 “사용후 핵연료를 사실상 원전에 영구보관하려는 꼼수”라며 반발한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확정된 기본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명목으로 시간을 보냈다”며 “한시가 급한 만큼 지금이라도 기본계획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