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재택근무,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출근.’

부동산 중개·관리 스타트업 직방은 8개월째 이런 실험을 진행 중이다. 작년 2월 ‘코로나 종식과 무관하게 영원히 원격 근무’ 지침을 내렸고, 넉 달 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본사 임차 계약을 해지했다. 작년 7월부터는 자체 제작한 가상 사옥 ‘메타폴리스’에서 관계사 포함, 600여 직원의 아바타가 옹기종기 모여 일하고 있다. 기자의 취재 요청에 직방은 ‘회사 주소’ 대신 ‘메타폴리스 접속 프로그램’을 보내왔다.

직방의 가상 오피스 ‘메타폴리스’를 찾은 기자의 아바타(아래)와 직원들의 아바타가 한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모습. 아바타가 서로 만나면 노트북이나 PC로 접속 중인 아바타 주인(실제 임직원)의 얼굴이 나타나고 음성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팀별로 모여 근무 중인 아바타들의 모습이 뒤쪽으로 보인다./박순찬 기자

◇가상 사옥에 출근한 600명의 아바타

직방을 방문한 것은 설 연휴 전인 지난달 27일. 노트북을 켜고 ‘메타폴리스’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3D(3차원 입체) 게임 같은 화면에 기자의 아바타가 나타났다. 눈앞에 우뚝 선 30층짜리 가상 빌딩으로 정장, 멜빵바지 등 다양한 복장을 한 아바타들이 출근하고 있었다. 직방이 쓰는 4층에 들어서자 부서별로 놓인 책상에 아바타들이 앉아 일하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바타들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까. 한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에 다가가면 각 아바타 머리 위로 아바타 주인의 실시간 얼굴 모습이 화면에 뜬다. 서로의 음성도 들린다. 이 회사 이두섭 이사는 “실제 회사에서 이뤄지는 소통 방식을 최대한 구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8개월째 집에서 가상 세계로 출근 중인 임직원들 반응은 다양하다. 지난해 입사 면접도 메타버스에서 봤다는 조은미 매니저는 “침대에서 책상까지 1분 만에 출근 가능하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며 “명절 연휴에도 길 막히기 전에 미리 고향 집에 내려가 원격으로 일했다”고 했다. 워킹맘인 정재은 서비스 개발 담당 매니저는 “일과 육아 병행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직방으로 이직했다”며 “일터가 메타버스라 심지어 인도에 있는 개발자와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과 개인 생활 분리가 안 된다” “매일 점심 혼밥을 하니 외롭다”는 게 대표적이다. 정 매니저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면 동료들끼리 커피타임도 갖곤 했는데 메타버스에선 그냥 ‘다시 일하자’는 분위기가 된다”고 했다. 정수기, 커피머신 앞에서 우연히 만나 잡담을 나누는 ‘스몰토크’도 사라졌고, 문서를 출력·복사하거나 퀵·택배를 요청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직방 관계자는 “사내 총무 역할도 하고, 구성원들이 복사하러 왔다가 서로 대화도 나눌 수 있도록 이달 중 메타폴리스에 ‘컨시어지룸’을 만들어 담당자(아바타)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직방의 가상 사옥 '메타폴리스' - PC로 접속하면 나타나는 30층짜리 직방의 가상 사옥(왼쪽 큰 빌딩). 아바타들은 이곳으로 출근한다. /박순찬 기자

◇”사옥 사라지자, 창원·대구·제주에서도 입사”

회사는 ‘물리적 사옥’을 포기한 대신 ‘인재’를 얻었다고 한다. 과거엔 사옥이 있는 서울 강남 출퇴근이 가능한 사람만 입사했지만 지금은 창원, 광주, 대구, 심지어 제주까지 전국에서 입사자가 잇따른다. 기존 직원들도 ‘제주 한 달 살기’ 등이 가능해져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중이다. 사내문화팀 김태길 리드(Lead)는 “앞으로 채용 범위가 해외 인재로까지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비용도 90% 가까이 절감됐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강남 역세권 사옥 임차료를 비롯해 책상·의자·복사기 같은 각종 집기 비용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입사자에게 ‘원격 근무 환경 조성 지원금’으로 100만원씩을 준다. 가상 사옥을 다른 회사에 임대하는 수익 사업도 시작했다.

직방은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오프라인의 장점을 꾸준히 메타버스에 접목하고 있다. ‘문자 채팅 기능’을 넣지 않아 아바타들이 음성으로 대화하게 하고 ‘순간 이동’ 대신 아바타들이 일일이 걸어서 사내를 활보하게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서로의 대화가 남에게 들리게 돼 있어 상사 뒷담화라도 하려면 가상 세계여도 아바타끼리 한적한 사무실 뒤편으로 가야 한다. 메타폴리스 개발을 주도한 김재은 리드는 “이런 기능 하나하나가 의도된 것”이라며 “가상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현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도록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직방은 직원들이 업무·취미를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밋업 데이’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고, 집에서 업무하기 힘든 직원을 위한 공유 사무실도 조만간 마련할 계획이다. 김태길 리드는 “공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 ‘함께 일한다’는 핵심 가치는 변한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