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은 이달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고용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지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지난달 13~22일 반도체·선박·자동차·석유화학·건설 등 주요 업종 매출 1000억원 이상 1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법이 인사 관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 조사(중복 응답 포함)한 결과 24.1%는 ‘고령 및 만성질환자의 채용을 기피할 것’이라고 답했고, 21.2%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전체적인 고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고 응답했다.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인사 관리나 채용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27.1%였다.

2021년 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공동 입장 발표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함께했다. /연합뉴스

기업들이 이처럼 고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만성질환에 의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기업의 면책 여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용노동부는 작년 11월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에서 질병으로 인해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질병의 원인이 업무로 인한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춘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은 “뇌심혈관계 질환같이 업무 인과관계가 애매한 경우라도 (정부에서) 경영 책임자가 안전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모호하고 불명확한 규정으로 기업들의 채용마저 가로막는 중대재해법은 반드시 보완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 국내 기업 54.7%는 중대재해법 시행이 생산·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8%에 그쳤다. 중대재해법 대응에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31.8%가 ‘법령의 의무 규정 모호’를 꼽았고 20.7%는 ‘경영 책임자 등 처벌 대상 불명확’이라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과도한 (안전) 의무 조치로 인한 비용 부담 증가(35.3%)를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소극적 경영 활동(24.2%)이 우려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사업주·경영 책임자 구속 등으로 인한 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응답도 18.4%였다. 실제 생산·투자·인사·재무를 포함해 경영 전반을 사실상 오너 혼자 책임지는 영세 중소기업에서는 중대재해로 오너가 구속될 경우 회사의 존속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법의 개선 사항으로는 ‘종사자 안전 수칙 준수 의무화’(35.7%), ‘종사자 과실로 인한 사고의 경우 경영 책임자 면책 규정 마련’(18.9%), ‘시행 시기 유예’(16.2%)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기업의 의무와 책임만 강조할 뿐 근로자의 안전 수칙 준수 의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면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안전 의식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