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자회사이자 원전 설계 전문 기업인 한국전력기술은 최근 조직 효율화를 이유로 핵심 조직인 원자로 설계 개발단을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의 조직 개편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21일 돌연 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주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19일 주가가 하루 만에 12% 가까이 폭락하자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한국전력기술이 설계한 원자력 발전소 공사 현장 모습./한국전력기술 제공

한전기술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 위기를 겪은 후 국산 에너지 기술 자립을 목표로 1975년 설립된 원전 설계 전문 회사입니다. 한국 최신형 원전인 ‘APR1400′ 개발을 주도했고, 한국형 소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의 설계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한전기술은 최근 대전에서 근무하는 개발단 소속 설계·연구 인력 260여 명을 가동원전사업처 등 4개 부서로 분산 배치하고 이들 인력 모두를 한전기술 본사가 있는 김천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한전기술 안팎에서는 “원전 설계 업무를 사실상 중단하는 것. 자동차 엔진 설계를 하는 연구진을 디자인 부서로 발령 내는 것과 다름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대전에서 하루아침에 김천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이 같은 불만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소동이 빚어진 것입니다.

한전기술은 지난 5월 취임한 한전 출신 김성암 사장 주도로 조직 개편을 추진해왔습니다. 이유는 경영 위기입니다. 실제로 2014년 842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난해 4317억원으로 반 토막 났습니다. 하지만 알짜 기업인 한전기술의 경영 위기는 방만한 경영보다는 탈원전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전기술이 조직 개편을 중단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이어진 조직 개편 해프닝을 보면 이 정부가 국가 핵심 산업인 원전을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같습니다. 세계 각국이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차세대 원전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주주가 주인인 상장기업마저 정권의 탈원전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모양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