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해 '안성탕면'을 한글로 쓴 한정판이 출시된다. 글씨는 가수 장기하(오른쪽)가 직접 썼다. /농심, 장련성 기자

“다 먹고 나서는 생각했다. 아, 이것은 내 인생 최고의 라면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가수 장기하가 지난해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장기하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로 솔직 담백하게 그려낸 이 책에서 장기하는 라면을 끓이고, 먹는 내용을 약 10장에 걸쳐 써내려갔다. 누군가는 김훈 작가 이후 라면을 주제로 이렇게 긴 글을 쓴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고, 누군가는 장기하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샌가 라면을 끓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라면에 진심이었던 장기하가 이번에는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한 한정판 라면 출시에 참여했다. 본래 한자로 쓰여 있는 브랜드 이름 ‘안성탕면(安城湯麵)’을 장기하가 한글로 썼고, 이 글씨가 라면 봉지에 새겨졌다. 농심은 한글날까지 이 한정판 라면을 판매할 예정이다. 장기하는 그동안 한글로만 곡을 쓰고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많은 관심이 있었고, 이번 손글씨 작업에도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안성탕면은 장기하가 산문집에서 인생 최고의 라면을 끓일 때 먹었던 라면이다. 그는 인생 라면 레시피를 소개했는데, 재료로는 안성탕면 한 봉지, 달걀 한 개, 간장, 굵은 대파 15㎝ 정도, 총각김치 한 뿌리, 즉석밥 하나, 도시락 김 한 봉지가 필요하다. 밥에 날달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간장달걀밥과 김, 총각김치, 라면과 국물을 이렇게 저렇게 교차하면서 먹는 게 포인트다.

“그때부터는 다 먹을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달걀밥을 먹고 총각김치 한 조각을 먹은 다음 라면을 먹어보기도 하고, 총각김치를 거치지 않고 라면으로 직행해보기도 한다. 라면에서 달걀밥으로 가보기도 하고, 달걀밥에서 라면으로 가보기도 한다. 라면을 달걀밥 위에 덜었다가 날달걀이 살짝 묻은 상태로 먹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냥 밑에 있는 흰밥을 파내어 김에 싸서 먹으면 또 입안이 정화되면서 새로운 기분이 된다.” -인생 최고의 라면 中

장기하는 출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주엔 뭘 쓰지, 하면서 라면을 끓여 먹던 중이었는데, 식사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걸 가지고도 쓸 수 있나, 하고 한번 써봤다”며 “정말로 라면을 먹듯 후루룩 썼고, 읽어보니 은근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글들과는 달리 마냥 즐겁기만 한 글쓰기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