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은 이달 초 영국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1㎏당 15.25달러에 거래됐다. 1년 만에 2.2배로 뛴 가격이다. 또 다른 배터리 핵심 원료인 코발트와 니켈은 같은 기간 각각 77%, 41% 급등했다. 전기차 모터 제조에 쓰이는 희토류 네오디뮴은 57% 상승했다. 각국이 탄소 중립을 위해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자, 필수 광물 수요가 폭증하며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전 세계가 전기차 보급 경쟁에 나서고 태양광·풍력발전에 뛰어들면서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핵심 소재·원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에 쓰이는 용융아연도금강 t당 가격은 최근 1년간 2배로 뛰어 140만원대다. 풍력발전기의 터빈 날개에 쓰이는 발사나무는 해마다 가격이 배로 뛰고 있다. 이들 자원을 거의 100%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탄소 중립 이행에 필요한 비용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탄소 제로 위한 '핵심광물' 가격 상승률

원료 값만 뛰는 것이 아니다. 지난 2월 영국 정부는 풍력발전기를 세울 수 있는 해상 입지 점유권을 경매에 부쳤는데, 무려 1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에 낙찰됐다. 탄소 배출 주범으로 몰린 BP와 토탈 같은 석유업계 공룡들이 체질 전환을 내세워 ‘묻지 마 입찰’에 나섰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을 향해 전 세계가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관련 원자재·설비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며 가격이 급등하는 ‘그린 보틀넥’(green bottleneck·녹색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각국 정부는 희토류와 필수 희귀 금속을 국가 안보 차원의 전략 물자로 분류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희토류 최대 생산국 중국은 전 세계 코발트·니켈 광산을 추가 매집하고 나섰고 미국·유럽·일본은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역내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원 확보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 자원 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관련자들이 줄줄이 수사받은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탄소 중립에 필수 자원을 확보하려는 국가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기차·풍력에 필요한 광물 사재기… 리튬 119% 구리 57% 폭등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한 전쟁이 급격히 전개되면서 ‘그린 경제’에 필요한 광물 자원 확보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코발트·니켈은 지난 1년간 각각 119%, 77%, 41% 상승했고, 전기차·풍력발전기용 전기모터에 필요한 구리값도 1년 사이 57% 급등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 수급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말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광물 자원의 쏠림이다. 예컨대 전 세계 희토류 62%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풍력발전기에 쓰이는 발사나무는 에콰도르에서 95% 나온다.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71% 생산된다. 리튬은 호주와 칠레에서 78%가 나온다. 가공 단계로 가면 중국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 중국은 리튬과 코발트 정제·가공 시장에서 각각 60%, 72%를 차지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선점 경쟁에 나서는 이유다.

◇원자재를 선점하라… 뒤늦게 뛰어든 한국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 GM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리튬 채굴에 직접 참여한다고 밝혔다. 소금 바다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솔턴해(salton sea)에서 CTR사가 진행 중인 미국 최대 리튬 채굴 프로젝트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2035년부터는 전기차만 만들겠다고 선언한 GM 입장에선 핵심 원료 공급망 확보가 절실하다. 리튬 생산량이 미미한 나라인 미국은 정부가 자원 안보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각국 정부는 희토류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호주는 우간다 마쿠투 지역에서 희토류를 탐사하는 ‘마쿠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 정부는 2002년 환경오염을 이유로 폐쇄됐던 세계 2대 희토류 광산 ‘마운틴 패스’(캘리포니아 소재)에서 희토류 발굴을 본격 재개하기 위한 보조금 입법을 추진 중이다. 호주·미국·캐나다 정부는 최근 힘을 합쳐 핵심 광물 매장 정보를 공유하는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중국은 일찍이 ‘전기차 굴기’를 선언하며 관련 원자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왔다. 콩고민주공화국의 7대 코발트 광산 중 4개는 중국 자본 소유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중국 CATL은 작년 9월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량 50%를 채굴하는 업체 네오리튬 지분 8%를 74억원에 사들였고, 지난 2월엔 23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국내 기업들도 자원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배터리 업계는 원자재 중개 업체들과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광산 확보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스코 등과 손잡고 인도네시아에 니켈 등 원자재 채굴부터 배터리 생산까지 하는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탄자니아 흑연 광산을 갖고 있는 호주 블랙록마이닝 지분 15%를 지난 2월 인수했다. 그러나 일찌감치 코발트 광산을 확보한 중국 등에 비해 출발이 늦어, 원자재값 상승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할 우려가 있다.

◇환경 파괴·인권 침해 논란도 피해야

탄소 중립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핵심 광물 채굴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모순도 등장하고 있다. 리튬 생산 2위국 칠레가 대표적이다. 칠레 리튬은 대부분 3000㎢ 넓이의 거대한 소금 평지와 염수호가 펼쳐진 북부 아타카마사막에서 채굴된다. 지역 원주민들은 리튬 채굴 과정에서 염수가 아닌 지하수까지 끌어 쓰면서 아타카마 지역 수자원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칠레 정부 산하 위원회에 따르면 2000~2015년 아타카마사막에선 강수 형태로 흡수된 물보다 21% 많은 물이 사용됐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코발트 채굴을 위해 아동 착취 논란이 끊임없이 나온다.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이들이 맨손으로 지하 20m 깊이까지 내려가 자루에 코발트 원석을 캐서 담는다는 것이다. 미 노동부 보고서가 인용한 추정치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부 25만5000명 중 어린이가 3만5000여명이다. 재생 에너지가 실상은 ‘더러운 에너지(dirty energy)’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과 윤리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