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 육백산 진입로에 풍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부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들이 살고 반세기 이상 가꿔온 인공조림지까지 있는 이곳에 2023년 가동을 목표로 풍력발전기 8기를 갖춘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장련성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육백산(1244m) 자락 해발 800여m 지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山羊) 두 마리가 산비탈에서 풀을 뜯다가 인기척에 놀라 숲속으로 사라졌다. 육백산은 산양뿐 아니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과 하늘다람쥐도 서식한다. 400~1300m 고지엔 평지 같은 지형이 나타나 풍광이 빼어나다.

이곳에 180m 높이 풍력발전기 8기로 구성된 30㎿ 규모의 발전 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그 예정 부지엔 육백산 인공 조림지도 포함돼 있다. 1964년부터 정부 예산을 들여 반세기 넘게 가꿔 온 숲이다. 사업이 진행되면 육백산 숲 일부를 밀어버리는 공사가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여온 문재인 정부는 풍력 보급이 저조하자 국유림법 시행령까지 바꿔가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행령 바꿔 멸종위기종 서식하는 인공 조림지에까지 풍력발전

육백산 풍력발전은 지난 정부에서도 검토됐지만 산림청과 환경부 반대로 제동이 걸린 상태였다. 현 정부 출범 초기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9월 육백산 풍력발전 관계부처 협의에서 산림청은 “국유림 경영·관리법에 따라 인공 조림지에는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018년 4월 환경부 원주환경청도 삼척시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했다. ‘삵·하늘다람쥐 등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한반도에서 희귀한 고위 평탄면 등 특이 지형’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여당이 총대를 메고 개입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기후변화대응 및 에너지전환산업육성특위’(위원장 우원식)는 2019년 5월 산림청·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고위 간부 등을 육백산 현지로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특위 위원들은 ‘현행법상 풍력 발전은 안 된다'고 하는 산림청 간부를 “행정편의주의적 규제”라고 압박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산업부가 산림청에 풍력 사업 허가를 요청하자 산림청은 즉각 국유림법 시행령 개정 방침을 밝혔다. 2019년 9월엔 당정이 인공 조림지가 풍력발전 면적의 10% 미만이면 사업을 허용하는 ‘육상풍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유림법 시행령은 결국 작년 12월 개정됐다. 육백산을 포함해 전국 20곳 국유림 인공 조림지와 숲길에 풍력발전기를 지을 수 있도록 길을 튼 것이다.

◇숲 연간 221조원 넘는 가치 국민에 제공

풍력 발전은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삼척시의 경우 육백산이 있는 도계읍에서만 190기에 이르는 풍력발전기 설치 사업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전력을 타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송·배전망도 설치해야 한다. 인공조림지를 포함한 막대한 숲과 희귀 동식물 서식지 파괴는 불가피하다.

육백산 현지를 둘러본 에너지 전문가는 “백두대간 숲과 인공 조림지 곳곳에 풍력발전기 수백 기가 들어설 것으로 안다”며 “혈세를 들여 인공 조림지를 만들어놓고 탄소 중립 한다며 그 숲을 다시 베어내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이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림청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11만6747㏊의 인공 조림지를 조성했다. 투입된 예산만 5848억원.<표 참조> 특히 2016년 927억원이던 인공 조림 예산은 현 정부 들어 해마다 늘어 2018년부터 3년 연속 매년 1000억원 넘는 혈세가 투입됐다. 같은 정부 안에서 한쪽은 숲이 더 필요하다며 인공 조림을 하고 다른 한쪽에선 거꾸로 이를 파헤쳐 풍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풍력발전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숲의 247배'라며 인공 조림지의 숲을 밀어내도 풍력발전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더 크다는 입장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온실가스 저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공들여 만든 숲을 파괴할 것도 없이 원전만 제대로 운용하면 된다”며 “산업부의 주장은 정부 에너지 정책이 그만큼 주먹구구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한 환경 전문가는 “KTX 천성산 터널이 도롱뇽 서식지를 파괴한다며 2004년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을 할 때 그를 찾아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한 사람이 문재인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다”며 “현 정부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숲에 풍력발전기 수백기를 꽂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