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도 성남시 ‘e편한세상 금빛그랑메종’ 아파트 공사장 안에 마련된 안전체험관 모습. 이날 새로 온 근로자들이 공사 작업 때 사용하는 안전벨트를 매보고 있다. /김지호 기자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공사장 한쪽에 마련된 165㎡(50평) 규모 안전체험관에서 새로 온 근로자 10여명이 비계(공사용 작업대) 체험을 하고 있었다. 한 근로자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비계에 오르자마자 비계가 기우뚱 한쪽으로 기울었다. DL이앤씨 현장 안전관리자는 “건설 현장에 처음 투입된 사람은 어떤 작업대가 허술하게 설치된 건지, 그런 작업대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며 “안전 교육을 동영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예 체험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체험관 밖으로 나서자 굴착기 한 대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부가 다가가자 ‘삑삑’ 하는 경보음이 울렸다. 안전모에 부착한 비콘(근거리 무선 통신 장치)에서 위험 장비가 가까이 있다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 현장에선 주말이면 드론이 날아다니며 안전모를 안 쓰고 일하는 등 위험한 모습을 발견하면 확성기로 경고를 보낸다. 이곳에선 하루에 적게는 1500명, 많게는 3000명이 일한다.

◇드론·로봇으로 사고 예방, 투자 나서는 건설사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에 건설 현장을 두고 있는 건설사들이 안전관리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지난 2019년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 855명 중 50.1%가 건설 현장에서 나온 만큼, 건설업계로선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안전사고 예방 위한 스마트 기술

삼성물산은 올해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장비 안전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재개발 건설 현장 등에 100여 차례 적용했다. 근로자가 VR 기기를 착용하고 건설 자재를 들어 올리는 작업처럼 실제 사고가 발생했던 작업 상황과 유사한 환경을 직접 체험해보는 식이다. 지난 3월에는 작업중지권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하청이 많은 건설 현장 특성에 맞춰, 협력 업체 근로자들이 위험 상황에서 작업 중지를 요청해 공사가 중단돼도 협력사에는 그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고,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도 지급하는 내용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근로자가 눈치를 보느라 위험한 환경에서 그대로 일하는 게 가장 부담스럽다”고 했다.

포스코건설은 터널 공사에 자율 보행 로봇을 투입했다. 발파 작업 직후 작업자보다 먼저 투입돼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역할이다. 포천~화도 고속도로 현장에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안전 담당 직급 올리고 정규직 늘려

건설사 안전 담당자의 지위와 권한도 올라가고 있다. GS건설은 지난 3월 터널·고속도로·항만 등 공사 현장에 안전소장제도를 신설했다. 포스코건설은 안전보건센터 담당 임원을 실장급에서 본부장급인 CSO(최고안전책임자)로 격상하고, 안전보건센터도 기존 2개 부서에서 4개 부서로 늘렸다.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지난달 조직을 개편하며 안전경영실을 새로 만들었다.

안전관리자 정규직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공사 규모에 따라 일정 수를 반드시 선임해야 하는데, 그동안 경력·임금이 낮은 계약직을 채용해 인원 수만 맞춘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규직 비율이 훌쩍 높아졌다. DL이앤씨의 경우 정규직 비율이 2018년 15%에서 올해 48%까지 늘었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 역시 최근 2~3년 사이 정규직 비율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대형 건설사와 달리 자금 사정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는 대응이 쉽지 않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운에 맡기겠다’며 사실상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했다. 2019년 기준 건설업종 산업재해 가운데 80.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중소업계는 “처벌만 강화하지 말고 영세 사업장에 대해서는 컨설팅 비용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