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중지된 경북 울진 신한울원전 3·4호기 예정지./이진한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공사 중단 상태에 놓인 신한울 3·4호기 원전이 내년 2월 말이면 발전사업 허가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신한울 3·4호기는 국내에 건설 예정인 최후의 원전으로, 취소가 확정되면 고사(枯死) 상태에 놓인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도 회복 불가 상태로 가게 된다. 이 경우 국내에는 2023년과 2024년 각각 완공 예정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만 남게 된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원전산업이 잠재력을 꽃피우기도 전에 스러질 운명에 처했다”며 “원전 산업계가 붕괴되면 해외 원전 수출도 어려워지고, 60년 정도 계속 가동될 국내 원전의 부품도 적기(適期) 교체가 어려워져서 원전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10일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신한울 원전 3·4호기는 별도의 행정조치가 없으면 내년 2월 발전사업 허가가 취소된다. 전기사업법(제12조 1항)에 따르면,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지 4년 이내에 공사계획 인가를 받지 못하면 발전사업 허가 취소 사유가 된다. 한수원이 2017년 2월 27일 신한울 3·4호기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했기 때문에 내년 2월 26일까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공사 계획 인가를 받거나, 공사 연기를 허가받지 못하면 백지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는 2017년 10월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할 때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한울 3·4호기에 대해선 별다른 행정조치를 하지 않고 보류 상태로 놔뒀다. 이미 발전사업 허가를 얻은 데다, 토지 매입과 주(主)기기 사전(事前) 제작 등에 총 7900억원을 지출한 상태라, 취소할 경우 소송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7900억원 중 4927억원은 두산중공업이 주기기 사전 제작에 투입한 돈이다. 내년 2월에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취소되면 두산중공업은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도 산업부·한수원을 상대로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산업부로선 신한울 3·4호기 문제가 ‘뜨거운 감자’와 같다. 취소하자니 조기 폐쇄했다가 문제가 된 월성 1호기와 같은 후폭풍이 두렵고, 공사를 재개·연기할 경우 탈원전 정책의 후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해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신한울 3·4호기는 더욱 민감한 이슈가 됐다.

10일 산업부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에 대해 한수원이 어떤 형태로든 결정을 내리고 관련 요청을 해오면 그에 따라 판단해 봐야 한다”며 “현재로선 공사 중단 상황을 연장할지, 아니면 허가를 취소할지 아무런 결론을 내린 게 없다”고 했다.

한수원도 이날 “정부 정책 이행과 원전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적의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만 했다.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고사 위기를 호소하는 산업계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업계에선 산업부가 한수원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원전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가 신한울 3·4호기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정해주지 않고 한수원이 요청하면 검토하겠다고 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라며 “지금이라도 신고리 5·6호기 때처럼 공론화를 거쳐서라도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