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삼성맨’들이 이 회장과 관련된 일화를 불러내고 있다.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현재 활동하는 기업인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박성인 전 삼성스포츠단 단장

‘프랑크푸르트 선언’ 직후인 1993년 10월부터 3년간 회장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79) 전 삼성물산 회장은 26일 본지 통화에서 “경영자로서 이 회장은 업(業)의 본질에 천착한 인물”이라며 서울 서초 ‘리버사이드 호텔’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직에 있다가 삼성으로 간 현 전 회장은 1981년 신라호텔 관리본부장 때 이 회장의 전화를 처음 받았다. 매물로 나온 리버사이드 호텔을 인수하라는 지시였다. 현 전 회장은 “특급호텔인 신라호텔이 일본 관광객이 드나들던 호텔을 인수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고, 결국 인수는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호텔업의 본질은 서비스보다는 부동산업인데, 팽창하는 서울 강남 지역 호텔을 놓쳤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현 전 회장은 “작은 일에도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직후부터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이금룡 코글로닷컴 대표는 본지에 “취임 후 첫 지시가 ‘업의 개념을 정립하라’는 것이었다” “이 회장의 말에는 실행이 뒤따랐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의 본질도 기술보다는 속도라고 봤다. 그런데 개발 시간이 늘어난 이유가 구매 과정에 있다고 봤다. 1990년대 초 이 회장은 삼성 반도체 공장 강당에 구매 관련 부서를 불러 모았다. 부서를 돌아다니며 도장 받는 시간도 아끼라는 메시지를 그렇게 전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후 구매뿐 아니라 다른 의사 결정 과정도 빨라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디테일을 중시했다. 1980년대 말 삼성 비서실에는 당시 제일모직 탁구단 박성인 감독의 훈련 일지가 회람됐다. 이 회장의 특별 지시였다. 그 노트에는 탁구대 모서리를 밀리미터 단위로 나눠 공이 떨어졌을 때의 스핀양과 방향을 분석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회장은 이 노트를 크게 칭찬하고, 박 감독에게 삼성스포츠단 전체 운영을 맡겼다.

이 회장을 일부에선 ‘은둔의 경영자’로 부르지만, 누구보다 외부인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현 회장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학계·문화계·관계(官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외부인과 식사했다”며 “각 방면 최고의 인재로부터 이야기 듣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