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4일 현대차그룹 회장에 선임돼 본격적인 3세 경영시대를 열게 된다. 이날 현대차는 임시 화상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한 뒤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지난 2년 간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왔고, 이날부터 회장에 올라 본격적인 ‘정의선 시대’를 개막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정 부회장의 회장 선임은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은 최근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정의선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맡으라는 뜻을 전달했다. 정몽구 회장은 현재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가족들은 병원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정관에 따르면, 현대차의 주요 경영진 선임은 정몽구 회장의 지시에 따르도록 돼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의 회장 선임을 준비해왔으며, 이날 이사회에 최종 보고할 예정이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재계에선 “정몽구 회장의 결단으로 현대차그룹 승계 문제가 조기에 해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기업에서 벌어졌던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나 승계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브랜드 비전 및 전략 발표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고급차 전용 브랜드 '제네시스' 공식 출범을 발표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1970년 10월 18일생으로 만 50세인 정 부회장은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해 현대모비스 부사장,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쳐 2009년부터 현대차 부회장을 맡았다.

정몽구 회장은 위기 때마다 아들에게 중책을 맡겨 경영 능력을 테스트했고, 정 부회장은 혁신적인 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2005~2009년 정 부회장이 기아자동차 대표이사(사장)를 맡았을 때 저조한 판매 실적을 ‘디자인 경영’으로 타개했다. 특히 그가 그룹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우디·폴크스바겐에서 영입한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을 맡아 기아차 디자인을 혁신해 ‘디자인은 기아’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금융위기 당시 현대차 부회장을 맡았을 때에는 미국에서 ‘구매 후 1년 내 실직하게 되면 차를 되사주는’ 파격적인 보증프로그램을 도입해 큰 호응을 얻는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 3월 13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에서 기아자동차 미국 조지아 현지 공장 투자 계약식이 열렸다. 사진은 계약식을 마친 후 환하게 웃고 있는 정의선 당시 사장(왼쪽)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조선DB

정 부회장은 2010년 현대차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고, 최근 출시한 제네시스 GV80과 G80 등은 “수입차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국내 제네시스 판매량이 벤츠·BMW 판매를 제치는 성과를 거뒀다.

2018년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었고 지난해 주주총회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올해 3월에는 부친에게서 21년만에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도 물려 받았다. 그는 수석부회장 취임 후 ‘모빌리티 서비스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천명하면서 다양한 모빌리티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수직 계열화'와 ‘자체 개발’에 익숙했던 현대차를 외부 협업에 개방된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다. 그는 수석부회장 승진 뒤 해외 유력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와 협업을 잇따라 단행했고, 지난해 미국 최대 전자쇼 CES에선 직접 나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청사진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친환경차 시장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현대·기아차를 세계 4위권 전기차 브랜드로 성장시켰고(상반기 기준), 세계 최초 수소전기트럭 양산에 성공해 ‘수소차 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전기차를 최초로 출시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 리더십에 대한 본격 반격에 나선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톱3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조직 문화 혁신에도 큰 관심을 보이며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는 “IT기업보다 더 IT기업이 돼야 한다”며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소통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대기업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폐지해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또 ‘짙은색 양복에 넥타이’로 고정됐던 직원들 복장 규정을 자율화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위기 때마다 중책을 맡으며 경영 능력을 발휘했고, 사내외에서 신임이 두텁다”며 “이번에도 자동차 산업 대전환기와 코로나 시대에 그룹의 최고 수장을 맡아 강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