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요셉의원을 찾았다. 오른쪽은 요셉의원 설립자 고(故) 선우경식 원장. /위즈덤하우스 도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요셉의원’에 20년 넘게 남몰래 후원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설립자의 삶을 소개하는 책 ‘의사 선우경식’을 통해서다.

책 속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부분에서 이 회장이 상무였던 2003년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을 방문한 일화가 소개됐다.

선우 원장이 그해 열린 13회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삼성전자 경영기획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이 회장이 요셉의원을 후원할 생각이 있어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더위가 한창이던 그해 6월 27일, 이 회장은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요셉의원을 방문했다. 삼성 측에서 외부에는 알리지 않기를 원했고, 선우 원장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 회장은 선우 원장의 안내로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주방과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둘러보며 병원 안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그때 선우 원장은 “혹시 쪽방촌이라는 데를 가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제가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회사에 주로 있다 보니 쪽방촌에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회장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요셉의원 근처의 쪽방촌 가정을 찾게 됐다고 한다.

단칸방 안에는 술에 취해 잠든 남자와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은 아주머니, 아이 둘이 있었다. 선우 원장 어깨 너머로 방 안을 살펴본 이 회장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자리에 있던 이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처음 본 이 회장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쪽방 골목을 돌아본 뒤 다시 요셉의원으로 돌아온 이 회장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솔직히 이렇게 사는 분들을 처음 본 터라 충격이 커서 지금도 머릿속이 하얗다”고 털어놨다.

이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봉투를 건넸다.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이 회장은 매달 월급의 일정액을 기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은 요셉의원에 두 번째 방문할 때부터는 검소한 티셔츠를 입었다. /위즈덤하우스 도서

이 회장은 이후에도 요셉의원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양복이 아닌, 검소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요셉의원의 설립자 선우 원장은 ‘쪽방촌의 성자’로 불린다. 가톨릭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기도 했지만, 돈 잘 버는 미국 의사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0년대 초부터 서울 신림동 달동네의 무료 주말 진료소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1987년 8월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한 후 21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의료 활동을 펼쳤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 무료 진료를 해온 그는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다 2008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책 ‘의사 선우경식’은 전기 문학 작가 이충렬 작가가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 써낸 선우 원장에 관한 유일한 전기다.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요셉나눔재단법인 요셉의원에 기부된다.

책 '의사 선우경식'. /위즈덤하우스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