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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는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 시설 ‘질그랭이 거점센터(4개 층)’가 들어서 있다. 1층에는 마을사무소와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여행사가, 2층에는 지역 특산물인 당근과 감자를 활용한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다. 3층과 4층에는 ‘워케이션(휴가지 원격 근무)’ 온 직장인을 위한 공유 오피스와 숙박 시설이 있다.

워케이션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작년에만 현대중공업, 대상 등 25개 기업에서 800여 명의 직장인들이 이 센터를 찾았다. 지역경제가 살아나면서 세화리 주민 숫자도 2016년 1986명에서 지난해 2271명으로 7년 사이 14.4% 늘었다.

정부가 세화리 사례에서처럼 농촌을 농민과 청년, 직장인, 기업이 어우러지는 기회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농촌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청년, 기업가가 모이는 ‘창의적 공간’이자, 첨단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공간’, 인력과 기술이 연결된 ‘네트워크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농촌 잠재력 극대화로 ‘소멸’ 막는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 소멸 대응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국민 모두에게 열린, 국민 모두가 살고, 일하고, 쉬는 새로운 농촌’을 기치로 내걸었다. 17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저출생·고령화와 수도권 인구 집중 등으로 2022년 기준 961만명이던 농촌 읍·면 인구는 2050년 845만명으로 12%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대한민국 총인구 감소 추정치(9%)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정부는 농촌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농촌의 소멸 위기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풍부한 자원, 넉넉한 공간 등의 강점을 지닌 농촌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촌 소멸에 잘 대응하면 도시 문제와 저출생, 도·농 균형 발전 등 국가적 이슈를 동시에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먼저 청년과 기업이 농촌 공간과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로 했다. 시·군별로 ‘농촌 청년 창업 콤플렉스’를 구축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청년들이 지역 농산물이나 마을 브랜드 등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자원 조사부터 창업 자금,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기업이 농촌을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등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 농촌 리빙랩’도 만들기로 했다. 원료 조달이나 제조·가공 등 농업과 연계된 전후방 산업을 묶어서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시·군 단위 농산업 혁신 벨트도 구축한다.

또한 정부는 농촌 소멸 고위험 지역에 읍·면 단위 농촌형 기회발전특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농촌에서 수요가 없어서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공간이 대상이다. 이 공간을 쓰려는 지자체와 기업에 세제 혜택 등 각종 농촌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업 용도로 쓰기 어려운 3헥타르(ha) 이하 자투리 농지들은 단계적으로 해제해, 주민 문화 시설 등을 만들기로 했다. 이러한 자투리 농지는 전국에 2만1000ha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28일 경북 의성군 청년키움센터에서 송미령(왼쪽에서 여섯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농촌 청년 창업인 간담회’ 참석자들이 파이팅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농식품부와 의성군은 간담회를 열고 농촌에 청년들이 원활히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촌 체류형 쉼터로 ‘4도3촌‘ 활성화

농촌 소멸 대응 추진 전략에는 국민들이 4도3촌(일주일에 4일은 도시에서, 3일은 농촌에서)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담겼다. 정부는 주말 농부들을 위해 농지에 ‘농촌 체류형 쉼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기존 농막보다 조금 더 크고, 숙식이 가능한 임시 거처 개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농촌 체류형 쉼터에 농장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묶어 ‘농촌 살아보기 체험 농원’ 등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농촌의 빈집을 관광객을 위한 숙박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빈집 활용 숙박업 실증 특례’ 대상을 50채에서 500채로 확대하고, 영업 일수 300일 제한도 풀기로 했다. 거래 가능한 농촌 빈집 정보를 민간 플랫폼과 연계해 거래도 활성화한다. 내년 중 농촌 빈집의 체계적 관리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농촌에 워케이션을 오는 직장인을 위해 ‘공유형 숲오피스’를 만들고, 치유농업 시설 관련 인력 양성 등이 담긴 치유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농촌 민박업 규모 등 운영 요건을 개선하고, ‘전 국민 1주일 농촌 살아보기’ 등의 캠페인도 진행한다.

정부는 농촌에서 살고, 일하고, 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올해 처음 시행된 ‘찾아가는 농촌 왕진 버스’로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농촌 지역 거점 공공병원의 시설과 장비, 인력을 지원할 계획이다.

농촌 ‘생활돌봄 공동체’도 올해 130개 꾸린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반찬 나눔 활동이나 셀프 빨래방 운영, 집 수리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민 수요를 반영한 주문형 셔틀버스 등 운송 서비스도 개선하고, 보건 기관과 마을을 연결하는 ‘ICT 기반 스마트커뮤니티 센터’도 구축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향후 광역별로 이러한 농촌 정책을 전담해 지원할 농촌센터를 단계적으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