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2022년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 채무는 최근 5년(2018~2023년)간 450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전 5년 증가액 190조원의 2.3배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로 재정 투입이 크게 늘어난 데다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복지 예산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1~2%대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세수는 주는데, 정부가 내는 빚은 계속 늘고 있어 국가 신인도 하락에 따른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한 국가 채무 비율

11일 정부가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작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0.4%다. 국가 채무 비율은 코로나 사태가 터졌던 2020년(43.6%) 처음 40%대에 진입한 후 3년 만에 50%를 넘어서게 됐다.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 비율은 20%대에 진입한 이후 30%대에 도달하는 데까지 7년(2004~2011년), 30%대에서 40%대가 되는 데까지 9년(2011~2020년)이 걸렸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40%선을 넘기고선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정부는 국가 채무 비율이 올해 51%, 2027년 5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저성장 속에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이 심화할 경우 60%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란 말이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온갖 감세와 재정 투입 정책이 쏟아지고 있어서 국가 채무 비율은 전망보다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 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53.5%다. 미국(144.2%), 영국(104.0%) 프랑스(117.3%), 일본(254.5%)보다 낮다. D2는 국가 채무(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빚까지 합친 것으로 국제 비교에서는 보통 이를 활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달러·유로·엔화 등 기축통화를 보유한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앞서 기축통화국은 97.8~114%, 비기축통화국은 37.9~38.7%가 적정 국가 채무 비율이란 추정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나라는 이 기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다른 비기축통화국들보다도 국가 채무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의 올해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 전망은 55.6%로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 13국 중 싱가포르(168.3%)와 이스라엘(56.8%)에 이어 셋째로 높다.

◇나라 살림 적자도 부담

나랏빚이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세금 등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써야 할 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 재정 수지는 36조8000억원 적자였다. 여기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걷어낸 관리 재정 수지는 87조원 적자였다. 실질적 나라 살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관리 재정 수지의 GDP 대비 적자 비율(재정 적자 비율)은 3.9%에 달한다.

과거 정부는 ‘국가 채무 비율 40%’와 함께 ‘재정 적자 비율 3%’를 내부 규율로 삼아왔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 이후 재정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하는 내용의 ‘재정 준칙’을 국가재정법에 신설하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작년 이 비율을 2.6%로 맞출 계획이었으나 1.3%포인트나 초과했다. 작년 재정 적자 비율은 코로나 여파로 4~5%대로 상승했던 2020~2022년보다는 낮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 5년(2015~2019년) 평균(1.6%)보다는 2.4배나 높다. 올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11일 기재부가 발표한 ‘월간 재정 동향 4월호’에 따르면 지난 1~2월 관리 재정 수지는 36조2000억원 적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2%(5조3000억원)나 증가했다.

세금 등 국민 부담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계속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적자성 채무는 자산 매각 등으로 갚을 수 있는 금융성 채무와 구분된다. 기재부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적자성 채무는 726조4000억원으로 2022년(676조원)보다 7.5% 늘었다. 나랏빚 전체에서 적자성 채무의 비율도 같은 기간 63.3%에서 64.5%로 1.2%포인트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