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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 없이 수조원씩 세금이 필요한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해 50조원이 넘는 세수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올해 재정 적자 규모가 9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부족한 세금을 어떻게 메꾸겠다는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17일 정부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올해 네 번째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통장 하나로 예·적금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펀드 투자까지 할 수 있어 ‘만능 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납입 한도를 연간 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비과세 한도는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리는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작년 11월)와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 완화(작년 12월), 금융투자소득세 백지화(올 1월)에 이어 추가로 증시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와 사회가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의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투자 분야가 활성화돼야 한다”면서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서 성장하고, 또 국민은 증권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자산 형성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감세 정책 발표가 이어지자 “선거용 아니냐”고 말한다. ISA 가입자들은 1인당 104만~152만원의 세금 혜택을 보지만, 정부는 연 2000억~3000억원의 세수 감소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재정 적자가 GDP(국내총생산)의 3.9%에 달할 정도로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감세 정책을 쏟아내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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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가 줄어들면서 정부 재정 운용에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지난해 1~11월 국세수입은 324조2000억원에 그쳤다. 1년 전보다 49조4000억원 덜 걷힌 것이다. 12월까지 합칠 경우 연간 세수는 345조원 정도로, 당초 예상(400조5000억원)보다 55조원가량이 덜 들어오는 ‘세수 펑크’가 발생하게 된다.

◇쏟아지는 정부·여당발 감세 정책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5년 도입하기로 했던 금투세가 백지화되면 연간 1조5000억원이 넘는 국세가 덜 걷힌다. 정부는 금투세 도입을 유예하는 동안 증권거래세를 낮추기로 했는데, 금투세 백지화에도 증권거래세 인하 조치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증권거래세 세율은 올해 0.18%에서 내년 0.15%로 떨어진다.

작년 말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는 오는 2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 중이다. 2021년 11월(20% 인하)부터 인하를 시작해 2022년 5~6월까지 30%, 그해 7~12월까지 37%를 인하해 주는 등 인하 폭을 키워 왔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된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14개월 동안 세수 감소 폭은 약 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기재부는 추산했다.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문재인 정부가 지급한 1·2차 재난지원금 가운데 정부가 환수하기로 했던 8000억원도 돌려받지 않기로 지난 2일 확정했다. 당초 과세 자료가 없는 영세 간이 과세자 등에게 재난지원금을 선(先)지급하고, 이 중에서 코로나 이후 매출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 57만명으로부터 돌려받기로 했던 돈이다.

한편 영세 소상공인 126만명을 대상으로 최대 20만원 전기요금을 지원하는 데 2500억원 예산을 들인다. 취약 계층 365만 가구의 전기요금 인상을 유예하면서 2900억원 상당이 한국전력 수입에서 깎이게 된다. 올해 전기요금 감면에만 정부·공공기관 돈 5400억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또 제2금융권에서 연 5%를 초과하는 금리로 대출받은 소상공인·자영업자 40만명에게 최대 150만원의 이자를 돌려주기로 했다. 여기엔 정부 재정 300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예산안 기준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91조6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에 달한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000억원, GDP 대비 비율은 2.6%였는데, 올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이다. 감세 정책이 쏟아지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0조원을 넘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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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도 총선 겨냥 공약 줄줄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총선을 겨냥한 공약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국회 농해수위 안건조정심의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 개정안 등을 여당 불참 속에 단독 의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하락 시 정부가 이를 보전해 주는 것으로, 매년 수조원의 세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부 의무 매입’ 부분 등 일부 조항을 수정해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 개정안은 주요 농산물 가격이 5년 치 평균에 미달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보전 대상 작물에 배추·무·고추 등뿐만 아니라 쌀(양곡)까지 포함시켰다. 국민의힘은 “농민 표를 노린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으나,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농가 표심을 겨냥해 보여주기식 밀어붙이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1일엔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경로당 주 5일 점심 제공’ 정책을 발표했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어르신들에게 주 5일 무료 점심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전국 경로당이 6만8000개소에 달해 재정 부담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 서울시당은 소속 구청장이 있는 서울 9개 지역부터 지자체 예산으로 이 정책을 시행하겠다며 노년층 표심 구애에 나섰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재명 대표 브랜드인 ‘기본 시리즈’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를 중심으로 전 국민 기본대출, 농어촌 기본소득 등 민생과 직결된 기본소득 관련 공약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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