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한 5일 오후 서울 시내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4개월 연속 3%대 오름세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를 기록하면서 전달 3.8%에서 4개월 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8월부터 넉 달째 3%대 상승률이긴 하지만, 지난달엔 상승 폭이 둔화한 것이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를 기록해 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과일·채소 등 농산물 물가는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고, 가공식품 물가도 전달보다 상승률이 오르는 등 물가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오름세 주춤...근원 물가 3%로 뚝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3% 올랐다. 올해 6~7월 2%대를 기록하면서 잡히는 듯했던 소비자물가는 여름철 이상 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추석 수요 증가 등을 계기로 8월부터 다시 고개를 들었다. 8월(3.4%), 9월(3.7%), 10월(3.8%) 등 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자 연말까지 물가 상승 흐름이 가팔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지난달 들어 상승세가 주춤한 것이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 하락 폭이 커졌고, 축산물·내구재·섬유 제품 등의 상승 폭이 둔화한 영향”이라며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물가도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두바이유 기준으로 국제 유가는 지난 9월 배럴당 93달러까지 올랐다가 11월 들어 배럴당 83.5달러까지 떨어졌다. 그 영향으로 석유류 가격이 1년 전보다 5.1% 떨어지면서 10월(-1.3%)보다 하락 폭이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물가 기여도가 큰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전체 소비자 물가를 0.25%포인트 끌어내렸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라 10월(7.3%)보다 덜 올랐다. 농산물 가격은 올랐지만, 도축 마릿수 증가 등 공급 확대로 축산물 가격이 1년 전보다 1.3% 낮아진 영향이다.

물가 변동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를 기록해 작년 3월(2.9%)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근원 물가는 작년 11월(4.3%)부터 감소 또는 보합세를 보이면서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소비자가 자주 사는 품목으로 구성돼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1년 전보다 4% 오르는 데 그쳐 4개월 만에 오름세가 멈췄다.

◇물가 안정? 농산물 13.6%, 가공식품 5.1% 올라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향후 추가적인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추세적인 물가 안정 흐름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고 했다. 4일 기준 국제 유가는 배럴당 81.3달러로 11월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은 11월에도 고공 행진하는 등 물가 불안은 여전하다. 농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13.6% 올라 2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신선과실류는 1년 전보다 24.6% 올랐고, 신선채소는 9.5% 올랐다. 특히 사과(55.5%), 복숭아(44.4%), 오이(39.9%) 등 11월 들어 가격이 많이 뛴 상위 10개 품목이 모두 과일과 채소류였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생산 감소한 사과 가격이 높아 토마토, 감귤 등 대체 품목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기온 하강과 일조량 부족 등으로 시설 채소 가격도 일시 강세를 보인다”고 했다.

최근 농식품부 장차관과 간부들이 식품 기업을 찾아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가공식품 물가도 꺾이지 않았다. 11월 가공식품 가격은 1년 전보다 5.1% 올라 10월(4.9%)보다 오히려 상승 폭을 키웠다. 장보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소주·맥주·냉동식품 등 가격이 오른 영향”이라고 했다. 외식비는 1년 전보다 4.8% 올라 10월(4.8%)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