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꺾이고 있지만, 에너지와 곡물,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오히려 늘었다. 사진은 10일 오후 서울 시내 전통시장 모습. /뉴스1

가파르게 치솟던 물가 상승세가 최근 둔화되고 있지만,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물가 상승률이 최고조였던 지난해 7월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 압력이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데다, 코로나 일상 회복으로 소비 수요도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세는 둔화했지만, 국민의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전체 상품과 서비스 품목 458개 중 1년 전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395개(86.2%)였다. 458개 품목을 기준으로 소비자물가를 조사한 2020년 1월 이후 가장 많았다. 안 오른 품목을 찾기 힘들 정도다.

반면 외환 위기 이후 24년 만에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작년 7월(6.3%)에는 전체 품목 중 383개(83.6%) 품목의 가격이 올랐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4.2%로 정점이었던 지난해 7월보다는 2.1%포인트 떨어졌지만,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물가 정점 때보다 많아진 것이다.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품목들도 바뀌었다. 작년 7월에는 등유(80.0%), 식용유(55.6%), 경유(47%) 등이 많이 올랐지만, 지난달에는 도시가스(36.2%), 드레싱(34.5%), 지역난방비(34%), 전기료(29.5%) 등이 많이 올랐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공요금과 소비재 요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총괄은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것이 시차를 두고 다른 품목의 가격 인상을 유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대면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수요 측면의 압력도 커졌다”고 했다.

한편 물가의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가격 변동이 큰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달 4.8% 상승(전년 동월 대비)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4.2%)을 웃돌았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작년 10월부터 4.8~5%를 유지하고 있다. 가격 경직성이 높은 외식 등 서비스 가격이 한번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