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0월 27일 미국 뉴욕 시라큐스에있는 오논다가 커뮤니티 칼리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론 부스에서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의 설명을 듣고 있다./로이터 뉴스1

중국이 세계 3위이자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규제에 나섰다.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을 표적 삼아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기술 자립’을 강조하며 집권 3기를 시작한 가운데, 중국이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무기 삼아 미국에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이크론의 제품에 대한 안전 조사를 진행한다”며 “핵심 데이터, 기초설비 및 서플라이체인의 안전과 잠재적인 사이버보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중국은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미국·대만에 이어 셋째로 큰 시장이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중국에서 4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회사 전체 매출의 1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중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마이크론이 중국에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당국의 발표가 나온 당일 미국 나스닥에서 마이크론 주가는 전날 대비 4.36% 하락한 60.34달러에 마감했다.

◇시장 볼모로 잡은 中… 왜 마이크론부터 때렸나

중국 반도체 전문 매체 신즈쉰은 2일 “당국이 마이크론을 첫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강화를 부추긴 배후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미국이 최근 내놓은 규제들의 최대 수혜자가 마이크론”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자국 기업을 비롯해 네덜란드·일본 등 반도체 장비 기업의 대중국 첨단 제조 장비 수출을 막고 있다. 그 결과 중국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와 창신메모리 등은 첨단 반도체 기술을 거의 개발하고도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 또 지난달 확정된 미국 반도체 보조금법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은 중국 생산 라인에서 첨단 메모리 반도체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추가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앞서가는 한국 기업과 뒤쫓는 중국 기업을 모두 때리면서 3위 업체인 마이크론이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지난해 로비 지출은 419만달러로 전년(192만달러) 대비 2배 넘게 급증했고, 로비 내용도 수출 규제 등 중국 관련이 다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중국의 규제가 마이크론 하나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마이크론에 대한 조치는 중국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수출 규제 수위를 낮추려는 수단이며, 앞으로 이런 조치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미·중 경쟁이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격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 중 퀄컴의 중국 매출이 64%로 가장 높고 브로드컴(35%), 인텔(27%), AMD(22%), 엔비디아(21%) 순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 기업 입장에서 14억명 규모의 중국은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 인공지능(AI)용 첨단 그래픽장치(GPU)를 판매하지 못하게 된 엔비디아는 지난달 21일 칩 성능을 다소 낮춘 중국 수출 전용 제품을 출시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우회로를 찾은 것이다. 지난해 연말엔 코로나 봉쇄 여파로 중국 시장이 요동치자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마이크론 역시 중국 시장 침체 여파로 최근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을 만큼 중국 시장이 기업들에 갖는 영향력이 크다.

◇국내 기업들 “공격 나선 중국, 우리에게도 위협”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공격적인 기조 변화는 장기적으로 우리에게도 위협”이라는 입장이다.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가 중단될 경우 중국 샤오미·오포·비보 등 기업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구매처를 바꾸며 단기적 이익이 생길 순 있지만, 중국이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을 추진하는 이상 한국 기업도 언제 제재 대상이 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자국 대표 메모리 기업인 YMTC에 19억달러의 지원금을 내어줬고,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에도 상한선이 없는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기술 자립을 하는 순간 미국과 동맹인 한국 기업들의 제품에 대대적인 판매 금지 정책을 내세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