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내 한 금융지주회사가 발행한 ‘코코본드’에 수천만원을 투자한 박모(54)씨는 최근 ‘크레디스위스 신종자본증권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기사를 보고 불안해졌다. 스위스 대형 은행이 발행한 채권도 어느 날 갑자기 휴지 조각이 되는데, 국내 은행이 발행한 상품은 과연 안전한지 의문이 든 것이다.

투자할 때 받았던 투자설명서를 찾아보니 한편에 “당사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상 자본비율이 기준치 미만인 경우, 투자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각(償却) 효력이 발생해 원리금 전액을 영구적으로 받지 못하는 매우 위험한 상품이며…”라고 적혀 있었다. 박씨는 “은행에 연락해보니 자본비율이 충분해서 스위스 은행 같은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하던데, 만기가 아직 1년 남아 있어 혹시나 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CS 사태에 놀란 코코본드 투자자들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가 경쟁사 UBS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크레디스위스가 발행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원)어치 코코본드(AT1)가 전액 상각 처리되면서 국내 코코본드 투자자들도 술렁이고 있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금융지주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총 5조1000억원 규모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지주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이 발행한 상각 조건 없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까지 합치면 작년 발행 총액은 6조4444억원에 달한다.

코코본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들이 줄줄이 부실화되자, 은행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지 않고 투자자들이 떠안도록 고안된 채권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전에 은행 보통주로 전환되거나 상각된다. 위기의 순간에 자본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변제 순위가 후순위채보다도 뒤로 밀리는 위험이 있지만, 이 때문에 다른 우량 회사채보다 금리를 더 얹어준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코코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발행을 늘려왔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코코본드 조기상환 불발 사태(흥국생명)가 불거지면서 코코본드 발행·유통시장이 잠시 얼어붙었다. 그러나 올 들어 신한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우리·JB·DGB 등 금융사들이 줄줄이 코코본드를 발행해 20일까지 발행액이 2조원을 넘어섰다. 통상 30년 만기로 발행되지만 5년 뒤 조기상환을 해주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예금 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즐겨 투자해왔다.

감독 당국은 국내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국제결제은행(BIS) 권고치(8%)를 뛰어넘는 15~16% 수준이어서 보통의 코코본드 상각 조건(총자본비율의 4% 미만)에서 한참 멀다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수신 대비 여신 비율도 90% 이상으로 높아, 위험자산 투자 실패로 은행 전체가 타격받은 크레디스위스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레디스위스의 경우 2년 연속 손실을 기록했고 고객 자금 유출이 있었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이자이익 기여도가 높고 자본 비율이 탄탄해 같은 위기가 발생하리라 상상하긴 어렵다”면서도 “당분간 투자자들 사이에서 코코본드에 대한 경계감이 상당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액 상각, 소송으로 번질 듯

코코본드 발행 역사상 최대 상각 사례가 발생하면서, 투심도 얼어붙었다. 바클리, UBS, 크레디아그리콜, 로이드 등 유럽 주요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 가격을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인 ‘인베스코 AT1 캐피털 본드 ETF’ 가격은 20일(현지 시각) 장중 15% 폭락하기도 했다.

이 회사가 발행한 코코본드를 쥐고 있던 투자자들은 소송에 나설 조짐이다.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은 “미국 법률사무소 퀸 이매뉴얼이 코코본드 보유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면서 “투자자들의 (소송) 요구가 곧 나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핌코 인베스코 등 대형 자산운용사가 이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크레디스위스 주식을 갖고 있던 주주들은 22.48주당 UBS 1주를 받게 됐는데도 코코본드 보유자들은 전액 손실을 보게 된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코본드가 후순위채보다 변제 후순위일지라도, 주식보다는 먼저 구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코코본드(신종자본증권)

평소엔 채권으로 분류돼 이자가 나오지만, 발행사가 자본 부족 등 위기에 처하면 주식으로 바뀌어 이자 지급이 중단되거나 전액 상각처리될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Contingent Convertible Bond(우발전환사채)’의 앞 두 글자씩을 따서 코코본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