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국회의장의 중재로 일단 연기됐다.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의장이 “여야가 더 협의하라”며 안건 상정을 3월 본회의로 미뤘다. 김 의장은 “정부 쪽에서 거부권 행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이상 의장으로서 국회 입법권이 존중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여야가 합의하면 합의안을, 합의가 안 되면 민주당안을 3월 첫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3월에는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농업 전문가들은 정부 매입(시장 격리)의무화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장기적으로 농민들에게 이익이 아니라 피해를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이렇게 되면 공급 과잉이 발생해 장기적으로 소규모 농지를 가진 중·소농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강원도 내 한 창고에 대형 쌀 포대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농민이 생산한 쌀은 지금도 가격이 높건 낮건 간에 농협과 민간RPC(쌀 유통업체)가 대부분 사들이는 구조다. 이미 안정적인 판로가 있는 상황에서 “팔리지 않은 쌀은 정부가 사줘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면 만성적 공급과잉으로 이어져 매년 쌀값(시장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결국 농가에 손해라는 것이다. 특히, 6ha 이상을 논을 경작하는 대농(大農)보다 농가의 96%를 차지하는 중·소농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쌀값 하락 초래해 중·소농에 더 피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값이 떨어지면 대농은 남는 쌀을 창고에 저장했다가 이듬해 7~9월 쌀 가격이 올랐을 때 되파는 식으로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지만, 10~12월 수확기에 쌀을 전량 농협이나 민간RPC에 파는 중·소농은 쌀값 하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창고에 쌀을 보관했다 이듬해에 팔 수 있는 대농과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중소농은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도 개정안에 이런 문제가 있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면서 “당장은 ‘정부가 쌀을 다 사주도록 하겠다’고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계청과 농식품부에 따르면, 0.5ha 미만 논을 경작하는 농가의 경우 순수익률은 20% 정도다. 2021년 산지 쌀값이 22만602원(80㎏ 기준)일 때 22.9%였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2030년 산지 쌀값은 17만2709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치)으로 떨어지고, 순수익률은 2.6%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7~10ha 농지를 갖고 있는 대농들도 순수익률이 떨어지지만, 충격을 덜 받는다. 같은 기간 순수익률이 41.8%에서 26.5%로 낮아진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벼 재배 면적이 6ha 이상인 대농은 2021년 기준 2만3999호로 전체 벼 농가(53만5000호)의 4%에 불과하다. 이들이 벼 재배 면적의 30%(22만8078ha)를 차지한다. 나머지 논 70%를 96%의 중·소농이 경작하고 있다.

쌀 소비가 매년 줄어드는 추세는 돌이키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매입(시장 격리) 의무화로 쌀 생산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은 피할 수 없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작년 56.7㎏으로 10년 전인 2012년(69.8㎏)보다 10㎏ 넘게 감소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5년(128.1㎏)부터 38년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일부 농민 단체, 전문가 우려

여야가 협상 시간을 벌었지만, 민주당은 “3월엔 반드시 처리한다”고 예고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법안들에 대해 국민이 많은 우려를 갖고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과 정부는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농민 단체도 우려를 표한다. 지난달 31일 약 6만명 회원을 둔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쌀 시장 격리 의무화가 실현돼도 쌀값 안정화, 농가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며 “쌀 시장 격리 의무화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새로운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9개 대학으로 구성된 전국농학계대학장협의회도 지난달 성명을 내고 “현재 추진되는 양곡관리법은 쌀에 대한 과도한 재정 집중으로 타 품목에 대한 투자 축소와 농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