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30-40대 대출자들은 금리 상승으로 소득의 절반이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모습. /뉴시스

연봉 7000만원의 40대 외벌이 직장인 김모씨는 2021년 3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은평구에 7억5000만원짜리 집을 샀다. 아파트 가격이 전년 대비 20%씩 급등할 때라 “이러다 평생 무주택자로 살겠다”는 조바심에 빌릴 수 있는 한도까지 대출을 받았다. 당시 연 2.52%였던 금리는 지난해 12월에는 6.04%까지 급등했다. 김씨는 “설상가상으로 거치 기간 1년이 지나 원리금 분할 상환이 시작되면서 지옥이 시작됐다”고 했다. 집을 살 때 매달 63만원씩 이자를 냈는데 지금은 이자만 151만원으로 불었고, 원금 분할 상환까지 시작돼 매달 237만원씩 갚고 있다. 그는 “월급에서 세금과 건강보험료·국민연금 등을 떼고 관리비와 식비 등 꼭 써야 하는 돈을 빼면 나머지를 모두 빚 갚는 데 쓰고 있다”면서 “30년 만기로 대출을 받았는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이 치솟으면서 불안감에 빚을 내 집 마련을 한 ‘영끌족’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연 0.5%에 머물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최근 3.5%로 급등하면서 변동 금리로 대출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은 계속 불어나는 중이다.

코로나가 확산하기 전인 2020년 1분기 1612조원 정도였던 가계 대출이 2021년 2분기 1800조원을 넘어서고 작년 3분기에는 1871조원까지 늘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영혼까지 끌어다 빚을 내서 집을 샀던 ‘영끌족’이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에 부동산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영혼까지 털렸다는 ‘영털족’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자 부담 1년 새 37조원 늘어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며 대출금리가 급등하자 대출자들의 고통이 더 커졌다. 영끌족이 급증하던 2021년 대출의 77%가 금리가 뛰면 이자 부담이 커지는 변동 금리 대출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금리가 급격하게 뛸 줄 몰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12조5000억원 불어난다. 지난 1년여만에 기준금리가 3%포인트 상승했으니 이자 부담이 37조원 넘게 늘어난 셈이다. 2021년 연 2~3%대였던 은행권 주택 대출 금리는 작년 말에는 연 7%대를 넘어서면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실제 이자 부담은 더 많이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대출 규모와 이자가 동시에 늘면서 지난해 주요 은행계 금융지주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뒀다.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15조8506억원으로 종전 최대였던 2021년(14조5429억원)보다 9%(1조3077억원) 늘었다.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는 이도 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회생 신청자는 8만9965명으로 전년(8만1030명)보다 11% 늘었다. 대출이 특히 많이 늘어난 서울의 경우 증가율이 21%(1만5228명→1만8448명)로 더 높았다.

◇이자에, 물가까지 뛰니 2중고

주택금융공사가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액과 소득을 비교해 산출하는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2004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200을 넘어섰다. 작년 3분기에는 215를 기록했다. 100이면 버는 돈의 25% 정도를 주택 대출 상환에 쓴다는 뜻인데, 200을 넘었다는 것은 대출받아 서울에 집을 산 사람들은 소득의 절반(50%) 이상을 빚 갚는 데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은 있지만 이자 부담에 치여 번 돈에서 원리금 갚고 남는 돈으로 겨우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버텨야 할 지경인 하우스푸어(house poor)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동산 ‘거품’이 걷히면서 집값이 하락하는 가운데 난방비 등 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고통이 더 커졌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5.2%나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라고 하는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6.1%에 달했다.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28.3%나 급등해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 위기 등 과거의 경기 침체기와 비교하면 지금 젊은 세대의 부채 규모가 큰 편”이라며 “최근 금리 상승으로 이들이 버티지 못하고 집을 팔거나 대출 상환을 포기할 경우 부동산과 금융시장 전체로 위험이 번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