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1위를 놓고 다투는 삼성전자와 TSMC의 지난 10년간 실적 그래프를 보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일정 주기를 두고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메모리 사이클’의 여파로 실적이 들쑥날쑥하다. 반면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꾸준히 실적이 우상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메모리 초호황기였던 지난 2018년 삼성 반도체 매출(86.2조원)은 TSMC(42.1조원)의 2배가 넘었지만, 4년 만인 지난해 3·4분기엔 2분기 연속 TSMC에 역전당했다. 증권가에선 연간 기준으로도 올해 TSMC 매출이 처음 삼성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2021년 전자기기의 두뇌 반도체인 CPU(중앙처리장치) 강자(强者)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1위에 올랐지만, 불과 2년 만에 새로운 반도체 영역인 파운드리의 강자 TSMC에 1위를 내주게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새 왕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TSMC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다. TSMC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무려 49.5%에 달한다. 100원어치를 팔면 50원을 버는 셈이다. 삼성 반도체는 그 절반인 25% 안팎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계속 첨단 공정에 투자해야 하는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는 감가상각 후에도 10년 정도는 더 돈을 벌 수 있는 특이한 구조”라고 했다. 첨단 제품이 아니면 급격히 사라지는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는 첨단에서 범용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 생산이 가능해 수익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TSMC는 60, 100나노와 같은 구형 라인들도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TSMC는 매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가 최근 파운드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메모리 시장은 중국을 필두로 한 후발 주자들의 추격이 거세 ‘초격차’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데다, 시장의 성장성도 둔화되면서 새 먹거리 발굴이 절실해진 것이다. 특히 ‘메모리 사이클’에 따라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은 호황과 불황을 수시로 오가는데, 파운드리를 주업으로 하는 TSMC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차별점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건 상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이 파운드리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가 되면,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한국에 하나 더 생기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 압도적 1위인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21년 4분기 52.1%였던 TSMC의 점유율은 작년 3분기 56.1%로 커졌다. 같은 기간 18.3%였던 삼성은 15.5%로 줄었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핵심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이자 파운드리 투자 동력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메모리 다운사이클(하락세)’을 맞아 올 상반기(1~6월) 내내 적자가 예상된다.

☞파운드리(foundry)

고객사에서 설계도를 받아 위탁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생산 설비 없이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회사, 독자적으로 칩을 설계하는 애플·구글 같은 빅테크들이 파운드리의 고객이다. 삼성전자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종합 반도체 회사지만 파운드리 사업부도 운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에 이어 세계 2위 업체다.

☞나노

1나노(㎚·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초미세 단위다. 반도체를 3나노 공정으로 만든다는 것은 회로 선폭(線幅)이 10억분의 3m란 뜻이다.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집적도가 높아져 반도체 성능은 좋아지고 한 웨이퍼(반도체 원판)로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가 개발한 3나노가 최첨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