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14일(현지 시각) ‘빅 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기준금리를 연 4.25~4.5%로 높였다. 지난 6월 이후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던 고속 질주에서 벗어나 6개월 만에 금리 인상 속도를 낮췄다.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추긴 했지만 이날 빅 스텝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최근 15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3.25%)보다 1.25%포인트까지 벌어지면서 자본 유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파월 “내년 금리 인하 고려 안 한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2%를 향해 계속 내려간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년에 ‘조기 피벗(금리 인하로 방향 변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날 연준은 내년 말 금리 전망치를 지난 9월 4.6%에서 0.5%포인트 오른 5.1%로 높였다. 한 번에 0.25%포인트씩 인상할 경우 3차례 정도 추가로 금리를 올린다는 뜻이다.

이날 연준은 지난 9월에 1.2%로 전망했던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0.5%로 대폭 끌어내렸다.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기 둔화가 나타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파월 의장은 “0.5%라도 성장을 하기 때문에 침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경기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미 금리 격차 커지면 원화 가치 하락 위험

1.25%포인트라는 한미 간 금리 차이는 2000년 10월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큰 격차다. 파월 의장이 내년에도 계속 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하면서 내년에는 금리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연준이 내년 말 금리를 연 5.1%로 제시했지만,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연 3.25%로 올리면서 이번 금리 인상기의 최종 금리를 연 3.5% 정도로 예고했다. 한은이 연 3.5%를 이번 금리 인상기의 정점으로 삼고, 연준이 이날 새로운 전망치에 부합해 연 5~5.25%로 금리를 올리면 한미 간 금리 격차는 1.7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양국 간 금리가 크게 벌어진다.

한미 간 금리가 큰 폭으로 역전된 상태로 오래 지속될 경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를 자극하고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외환시장에 달러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환율이 급등하면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은은 연준과의 금리 차이가 과도하게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보폭을 맞출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냥 미국을 의식한 금리 추격전을 벌일 수 없는 처지라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자금시장 경색이 나타났고, 내년에는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높은 금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리가 오를수록 187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도 커진다.

◇내년에 연준이 금리 내릴 가능성도 있어

금리 격차가 벌어져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도 있다. 외환 위기 이후 3차례 한미 간 금리 역전기에 두드러진 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외환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으로 충분하다”며 “외환위기 시절이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가)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신용 위험을 걱정할 우려는 없다”고 강조해왔다.

또한 파월 의장이 매파적인(금리 인상 선호) 모습을 보였지만 내년에 연준이 결국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파월 의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날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는 소폭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성장이 둔화되면 결국 연준이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시장의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고 했고, 월스트리트저널도 “연준이 앞으로 더 비둘기파(금리 인하 선호)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