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메타 본사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오너 메타는 11월 11,000명 직원을 해고했다.AFP 연합뉴스

글로벌 산업계에서도 연일 날카로운 감원(減員) 바람이 불고 있다. 골 깊은 경기 침체가 닥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테크, 자동차, 금융, 유통, 미디어를 포함한 거의 전 업종에서 선제적 감원으로 몸집을 줄여 혹독한 겨울나기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인력 관리 전문 기업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기업들은 총 7만6835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1년 전(1만4875명)의 5배가 넘는 대량 해고가 한꺼번에 이뤄진 것이다. 보고서는 “올 들어 11월까지 미국 기업은 32만명 이상을 해고했다”며 “특히 테크 분야가 가장 많은 해고를 단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커지면서 이른바 ‘L(Layoff·해고)의 공포’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업종 불문 감원 칼바람

감원 칼바람이 가장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곳은 테크 업계다. 지난달 전체 직원의 13%인 1만1000명을 해고한 메타(옛 페이스북)가 대표적이다. 메타로선 창사 18년 만의 첫 대규모 정리 해고였다. 아마존도 같은 달 역대 최대 규모인 1만명에 달하는 정리 해고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앤디 제시 아마존 CEO(최고경영자)는 “해고는 2023년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 제조업체 HP, 통신 장비 업체 시스코, 소셜미디어 트위터, 동영상 플랫폼 업체 넷플릭스까지 칼바람은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은 아직 대량 해고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신규 채용을 중단하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중국도 테크 업계발(發) 감원 한파가 덮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올 상반기에 1만3000여 명을 정리 해고했고,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지난해 7월 이후 올해까지 1만여 명을 감원했다. 중국 최대 IT 기업 텐센트도 3분기까지 7000여 명을 정리했다.

11월 10일 미국 메사추세츠 웨스트보로 아마존 BOS27 로보틱스 이노베이션 허브에서 직원들이 로봇을 테스트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해고 한파는 이달 들어서는 월가(街)와 자동차, 유통 같은 다른 분야로까지 번지면서 ‘경기 침체의 확실한 전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1600명을, 골드만삭스는 최소 4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필요 인력 축소, 전동화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포드가 3000여 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데 이어, 벤츠도 지난 9월 브라질 상파울루 공장에서 3600명을 감원했다.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 전체 1만4000명 직원 중 5%를 정리 해고하기로 결정했고, 중고차 업체 카바나도 지난 5월 25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500명을 추가로 해고했다.

유통 분야에선 세계 최대 오프라인 유통기업 월마트, 펩시콜라를 만드는 펩시코, 패션 업체 갭과 H&M도 대규모 정리 해고에 돌입했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월마트는 지난 8월 상품 개발과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본부 직원 200여 명을 해고했다.

◇경기 침체 징후 앞두고 선제적 감원

이 같은 감원은 금융 시장에서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격차가 40여 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지는 등 경기 침체 징후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감원 한파는 미 노동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8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주 전보다 6만2000건 증가한 167만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이후 최대치다.

특히 이번 감원은 현장 인력인 ‘블루칼라’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인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향후 경기·고용 전망을 어둡게 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이어지는 대량 해고는 생산직·판매직이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거 채용된 풀타임 사무직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에서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감원 칼날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