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연설하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AFP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이 사실상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의 시기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파월 의장은 30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금리가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떨어뜨릴 정도의 제약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기에 인상 속도를 다소 늦추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12월에 더 작은 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금리를 빠르게 올렸고, 이것이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리 인상을 늦추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6·7·9·11월에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급격히 금리를 끌어올린 충격이 시간을 두고 서서히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준은 오는 13~14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감속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 금리를 분석해 기준금리를 예측하는 모델인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은 연준이 이달 빅 스텝을 선택할 확률을 79.4%,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확률을 20.6%로 내다봤다.

파월 의장은 다만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며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것이라는 신호가 있으나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고 물가안정 회복을 위해 가야할 길이 멀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2% 물가 상승률 달성을 위해 노동시장 열기를 식혀야 한다”고 했다.

파월 의장이 물가를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12월 금리 감속 시작’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하며 크게 반겼다. 이날 S&P500은 3.09% 올라 2개월 사이 최고치로 뛰었다. 다우존스평균은 2.18%, 나스닥지수는 4.41% 각각 상승했다.

이달에 금리 인상 감속이 시작될뿐 아니라 이번 금리 인상기의 정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금리 인상이 계속돼 9월에 금리를 추정한 것보다 다소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연준 위원들은 9월 FOMC에서 점도표(dot plot)로 내년 말 금리를 평균 연 4.6%로 내다봤다. 대략 연 5% 가량이 이번 금리 인상기의 최고점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달에 예정대로 빅 스텝을 밟으면 미국 기준금리는 연 4.25~4.5%가 되는데, 이후로는 빅 스텝 한번 또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 두번 정도만 선택하고 더 이상 금리를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의 ‘감속 발언’을 반겼지만 그동안의 빠른 금리 인상의 후폭풍으로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연준은 경기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을 공개했다. 이번 베이지북은 “수요 약화와 공급망 차질 해소로 물가상승의 속도가 느려졌다”면서도 “미국 기업들은 물가상승 속도가 줄어든 대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베이지북은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구역별 경기 흐름을 평가한 내용을 담는데, 이번호는 10~11월 경기를 다뤘다. 이달 열리는 FOMC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베이지북은 “(전체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지역 가운데) 5개 지역에서는 경제 활동이 약간 증가한 반면, 나머지 7개 지역에서는 경제 활동이 직전과 같은 수준이거나 소폭 감소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