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에 붙어있는 대출 및 예금 관련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여유자금 2000만원을 정기예금에 넣으려던 40대 직장인 정모씨는 6개월짜리 상품에 넣은 뒤 이후에 더 높은 다른 정기예금으로 갈아타려는 계획을 세웠다. 최근 금리가 오름세라는 걸 감안했다. 하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에 다니는 친구가 “금리 상승이 거의 끝나가는 듯하니 지금 금리로 오래 받을 수 있도록 만기를 길게 가져가는 게 이익일 수도 있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은행 예·적금으로 시중 자금이 대거 몰려드는 가운데 만기가 짧은 예금이 각광을 받고 있다. 가파른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단기 예금에 가입했다가 약정 이자를 얻은 뒤 금리가 더 높은 예금이 나오면 갈아타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리 상승이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2~3년 이상 장기 예금 가입을 고려할 때라는 말이 나온다. 방망이를 계속 짧게 쥘 것인지, 아니면 길게 잡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6개월 미만 비율 20년 만에 20% 돌파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은행 정기예금 909조4400억원 가운데 만기가 6개월 미만인 단기 예금은 192조5101억원으로 전체의 21.2%였다. 전체 정기예금 중 6개월 미만의 비율이 20%를 넘은 건 2002년 5월 이후 20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래픽=백형선

6개월 미만 정기예금은 올해 들어서만 9월까지 70조5771억원 급증했다. 작년 한 해 43조1059억원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반면, 정기예금 중 만기가 3년 이상인 장기 예금 비율은 9월 말 1.9%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1월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낮아졌다.

올해처럼 만기가 짧은 예금에 돈이 쏠리는 건 예외적인 현상이다. 보통 은행 예·적금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다. 올해 단기 예금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하루가 다르게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짧게 투자한 뒤 더 오른 금리로 재투자해야 이득이다. 월 단위로 금리를 주는 초단기 예금이나 인터넷은행들의 26주짜리 적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28일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의 최고금리는 만기가 6개월이면 연 4.58%지만, 2년은 연 4.23%, 3년은 연 4.18%로 낮아진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역시 만기 6개월짜리 금리는 연 4.7%지만 2년과 3년짜리는 연 4.65%에 그친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장기예금 가입해 묻어두나

그러나 최근 들어 미묘하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금리 인상의 정점이 가까워진다는 예측이 힘을 얻으면서 이제는 정기예금을 장기로 가입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10월까지 4개월 연속 낮아지며 정점을 통과했다는 신호가 나온 이후로 미국에서 금리 상승세가 이미 주춤하다. 국내 금융시장 역시 이달 들어 금리가 횡보세를 보이거나 소폭 하락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에는 쭉 연 4%대 초반이었지만 이달 25일에는 연 3.644%까지 하락했다.

앞으로 기준금리가 오르는 속도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는 신호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기준금리를 연 3.25%로 올리면서 최종 금리가 연 3.5%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금리 정점까지 앞으로 0.25%포인트만 남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지금 만기 2~3년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앞으로 금리 오름세가 멈춘 뒤에도 고금리 상품을 보유하게 돼 이득이 된다. 이미 금융시장이 미래 변화를 선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고려하는 발 빠른 소비자들 중심으로 장기 예금에 대한 문의가 늘어났다고 PB(프라이빗 뱅커)들이 말하고 있다. 송재원 신한은행 PWM서초센터 팀장은 “요즘에는 은퇴자들이나 매월 현금 흐름이 필요한 고객에게 2년 이상 장기 상품에 가입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며 “투자 자금의 절반 정도는 중장기 확정금리 상품으로 갈아 탈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예금 등 금융 상품의 만기를 다양하게 분산해서 투자하는 게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