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오르고 소액 결제도 부담스러워지자 5만원 미만 결제도 무이자 할부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커피 전문점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뉴스1

40대 회사원 김모씨는 최근 직장 동료들에게 점심을 산 뒤 5만5000원을 3개월 무이자 할부로 내기로 했다. 식당에서는 일시불로 결제했지만, 그날 오후 카드 회사 모바일 앱에서 할부 결제를 신청했다. 김씨는 “동료들에게 점심을 살 일이 있었는데 수수료 없이 3개월 분할 납부할 수 있어 한숨 돌렸다”면서 “친구에게 배운 방법인데, 주변에서도 많이들 알고 있더라”고 했다.

10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5.7% 오르는 등 6개월 연속 5% 이상 물가가 뛰면서 갈수록 지갑이 가벼워지는 상황이라 소액이라도 무이자 분할 납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5만원도 일시불은 부담스러워 ‘결제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장보기 금액 3만원도 월 1만원씩 나눠 내

김씨가 쓰고 있는 카드는 지난 7월 출시된 롯데카드의 ‘로카 나누기 카드’다. 전월 실적에 상관 없이 최소 3만원부터 무이자 3개월(30만원 이상은 6개월) 분할 납부가 가능하다. 가맹점에서는 일시불로 결제해놓고 카드사에 대금을 나눠내는 방식이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할부 결제나 다름없다. 통상 카드사에서는 최소 결제 금액이 5만원 이상이어야 할부 결제가 가능한데 3만원부터도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출시 3개월 만에 신규 발급 1만장을 넘겼다. 이 카드의 분할 납부 건수 중 약 30%가 5만원 미만 결제다.

“지갑 사정은 얇아지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 심리를 잘 겨냥한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온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10만원 이하 소액 할부가 늘고 있는 흐름이 뚜렷해 더 작은 금액도 나눠낼 수 있는 카드를 출시했다”며 “온라인쇼핑·한식·수퍼마켓 등에서 5만원 미만을 나눠내는 고객이 많았다”고 했다. 롯데카드의 경우 10만원 이하 할부 결제액이 2020년에는 1.17%(2019년 대비) 증가했는데, 지난해에는 8.65% 늘었다. 올해는 두 자릿수 증가율이 예상된다.

그래픽=백형선

◇빅테크 소액 후불 결제 ‘영끌’해 할부처럼 이용

대학생 여모씨는 신용카드가 없는 대신 매달 50만원 정도를 빅테크의 선구매 후결제(BNPL·Buy Now Pay Later) 방식으로 지출한다. BNPL은 결제 업체가 가맹점에 먼저 대금을 내고, 소비자는 구매 대금을 훗날 납부하는 후불 결제라 신용카드 할부와 유사하다. 네이버페이와 토스는 월 30만원까지, 카카오페이는 월 15만원까지 이런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여씨는 “체크카드 통장에 돈이 남아있어도 급전 여유는 없어 결제를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는 용도로 쓰고 있다”며 “소액후불결제 서비스를 여러 곳 이용하면 한 달에 수십만원을 외상하는 효과가 있어 알바비가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소액후불결제 시장에 2021년 4월 가장 먼저 진출한 네이버파이낸셜은 올해 6월부터는 월 이용 금액이 100억원을 넘기고 있다. 올해 3월 서비스를 출시한 후발 주자 토스도 월 이용 금액이 170억원 수준이다. 네이버·카카오·토스 빅테크 3사의 소액후불결제 이용액은 지난 6월 총 202억5940만원에서 8월 총 281억8000만원으로 늘어, 두 달 만에 39% 증가했다.

◇금리 뛰면서 이자 못 갚을 대출자 120만명

가계 대출 금리 상단이 이미 7%대 중반까지 오르면서 이처럼 소액이라도 결제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 대출 평균 금리가 7% 수준이 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90%를 초과하는 대출자가 120만명이 생긴다. 소득에서 원금과 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