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시세로 전국 주택 매매·전세가 하락 폭이 이달 들어 크게 확대되며 주택 시장 전반의 하락세가 더 심화하고 있다. 23일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10일 조사 기준) 전국 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단독주택 포함) 평균 매매가는 전월 대비 0.55% 하락했다. 사진은 23일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모습./연합뉴스

30대 회사원 이씨는 서울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고 포기했던 내 집 마련 기대를 다시 갖게 됐다. 자금 계획을 세워보려 은행 모바일 앱에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조회해봤다가 깜짝 놀랐다. 1년 전보다 대출 가능 금액이 1억원 가까이 쪼그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금리 상승기라 이자가 늘어날 거란 예상은 했지만, 대출 한도까지 줄어드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가격이 크게 떨어진 급매물이 나온다고 해도 대출금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연 7%를 뚫는 등 금리 상승세가 가파른 가운데, 실수요자들은 이자 부담은 늘고,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총 대출액이 1억원을 초과하면 연간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도록 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갚아야 할 이자가 늘어나면 신규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 한도가 부족해 살 수 없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 금리 뛰자 주택대출 한도까지 확 줄어…소득에 따라 원리금 연 상환액 한도, 이자 늘면 대출 원금 감소

금리 인상은 개인별 DSR 규제와 맞물려 주담대 한도를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 23일 한 은행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연봉 5000만원인 회사원 A씨가 KB부동산시세 11억원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30년 만기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 방식)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1년 새 최대 대출 한도가 3억9300만원에서 3억700만원으로 8600만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9억원 이하 40%, 9억원 초과 20%)에 따른 최대 대출 한도인 4억원 가까이 대출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지난해 9월 연 3.03%였던 변동형 주담대 금리가 불과 1년 만에 연 5.09%로 뛰었기 때문이다. A씨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봉의 40%인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는데, 금리가 오르면 갚아야 할 이자가 증가해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들었다. 연간 내야 할 이자가 1179만원에서 1552만원으로 373만원(32%) 증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은행 대출 한도는 이전보다 줄었는데, 내야 하는 이자는 더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불리해진 대출 여건이 주택 매수세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총 대출액이 1억원 초과하면 연 상환액 한도는 소득의 40%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 이어져 연 3.5%까지 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인 연 3.40%까지 올랐다. 이달 한은의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이 반영되는 11월에는 주담대 금리가 더 오를 전망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용점수 951~1000점 고신용 차주들도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연 4.56~5.14%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 부동산 침체와 맞물려, 주택대출 33% 감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규 주담대 규모는 급감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신규 취급한 주택대출은 39조803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59조6872억원)보다 33.3% 줄었다. 월별 증가 폭도 기록적으로 둔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전월 대비 9000억원 증가한 793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둘째로 증가 폭이 작았다.

아파트 등 주택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최근 상황과 맞물려 주택 매수 심리는 더 위축되고 있다.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 한도가 적게 나와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수요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매수 절벽 현상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은 10월 셋째 주 전국 아파트 값이 일주일 만에 0.28% 떨어져,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아파트 값은 전주 대비 0.27% 하락해 10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