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철강 업체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 사장실은 지난 5월 2일 이후 넉 달째 노조가 점거 중이다. 현장 사장실을 뺏긴 이 회사 사장은 서울 사무소에서 비대면 경영을 하고 있다. 인천, 포항 공장에선 공장장들이 모두 노조에 사무실을 점거당해 임시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제철 노조는 현대차·기아 등 현대차그룹 다른 계열사들과 같은 특별공로금 400만원을 요구하며 이 같은 불법 점거를 벌이고 있다. 회사 측은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재계는 “지금도 이런 지경인데 노란봉투법까지 만들어져 노조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해지면 폭주하는 노조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 “가뜩이나 폭주하는 노조에 날개를…”

현행 노조법도 합법적인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노조와 근로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손배소 청구는 정부가 노조의 불법 사업장 점거나 조업 방해 행위에 대해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항 수단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대체 근로자를 투입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 근로자 투입도 힘들다.

5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이처럼 노조에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 청구까지 할 수 없게 된다면 기업은 생산 시설과 활동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라인이 파업 때문에 중단돼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기업의 손배소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해외 투자 유치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 법이 통과되면 노조의 협박, 파괴, 상해 행위가 만연할 텐데 어떤 해외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나”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해 국내 기업 활동 경쟁력을 떨어뜨린 ‘중대재해처벌법’ 시즌2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재계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법천지법”

전 세계적으로 봐도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게 제한하는 법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에서는 노동조합이 정당하지 않은 파업을 한 경우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에게 기업이 영업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합법적 쟁의 요건을 갖췄더라도 파업 당시 행위가 정당하지 못하면 노조는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영국은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공공 부문 노조 등 조합원 10만명 이상인 노조에 적용되는 손해배상 상한액을 기존 25만파운드(약 4억원)에서 지난 7월 100만파운드(약 16억원)로 4배로 올렸다.

영국·독일에 비해 노조 활동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프랑스의 경우 1982년 노조의 모든 단체행동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법률이 개정된 적이 있지만, 곧바로 헌법위원회(우리의 헌법재판소에 해당)에서 위헌 결정을 내려 시행되지 못했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도 노조의 불법행위는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불법행위자가 상대방이 입은 손해에 대해 배상하는 것은 법 질서의 기본 원칙인데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묻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법안”이라며 “불법행위로 막대한 피해를 본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조차 못 하게 만드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제외하고는 노조 쟁의 행위에 대해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법안. 폭력·파괴 행위라도 노동조합이 계획했다면 노조원에 대한 손해배상이 제한된다. 불법 파업이나 불법 점거 등 사실상 노조의 모든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한한다. 2009년 쌍용차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이들을 돕기 위한 성금이 노란봉투에 담겨 전달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