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1354.9원)보다 7.7원 상승한 1362.6원에 마감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시스

단기 외채 비율이 2012년 이후 10년 사이 최고치로 상승했다. 단기 외채는 1년 이하의 만기로 외국에서 빌려온 대출을 말한다. 만기가 짧은 대외 채무라서 금방 유출될 수 있는 자본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큰 가운데 단기 외채가 많으면 해외 투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어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을 위험이 커진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단기 외채 비율은 41.9%로서 2012년 2분기(45.5%)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단기 외채 비율이 40%를 넘은 것도 2012년 3분기(41.6%) 이후 10년 만이다. 국제적으로 단기 외채 비율은 외환 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액수로 산출한다.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외환 보유액은 4382억7800만달러(약 597조원)이며, 단기 외채는 1838억4900만달러(약 250조원)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 추이

‘제2의 국난’이라고 했던 1997년 외환 위기도 일본계 단기 외채가 빠른 속도로 유출된 것이 방아쇠를 당겼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외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급락)하고 무역적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단기 외채가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40% 넘어선 단기 외채 비율

단기 외채 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70%대까지 올랐지만 이후로 계속 줄어들어 2012년 4분기부터는 10년 가까이 30%대 이하에 머물렀다. 작년 말까지도 35.6%였는데 올 1분기에 38.2%로 높아지고 결국 2분기 40%를 넘어섰다.

올해 단기 외채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한은은 해외 주식·채권 투자가 여전히 증가세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과 개인들이 해외 투자를 하기 위해 달러 환전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은행들이 단기로 거액의 달러를 해외에서 끌어와 증권사 등에 빌려주거나 환전해주면서 수수료 수익을 챙긴다는 의미다. 올해 상반기에만 단기 외채가 191억달러(약 26조원)나 증가했는데, 그중 166억달러가 은행이 주도해 해외에서 차입한 돈이다.

단기 외채가 증가하는 동안 외환 보유액은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에 단기 외채 비율이 빠른 속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작년 말 4631억달러였던 외환 보유액은 올해 상반기 사이 5.4%에 해당하는 248억달러나 급감했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가 발생해 달러 유출이 예년보다 많아졌고,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 속도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외환 보유액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강달러 시대라 외환 보유액 점검해야”

단기 외채 비율이 단기간 급상승했지만 한은은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주로 은행들이 달러를 해외에서 짧은 만기로 차입했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대외 지불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외환 위기 당시 기업들이 단기 외채로 허덕였던 것과 달리 요즘은 지급 여력을 확보한 대형 시중은행들에 단기 외채가 집중돼 있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2014년 이후 해외에 빚보다 자산이 많은 순 대외 채권국이라는 점도 거론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단기외채 비율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올 들어 무역적자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 단기외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그러나 올 들어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 외채 비율 상승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13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1360원대까지 치솟은 상태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달러 차입금을 갚을 때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강달러 태풍에 신흥국들이 무너질 수도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경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흥국 연쇄 부도로 세계적인 신용 경색이 발생할 경우 해외에서 달러 회수에 들어가 국내 금융시장에 큰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환율이 상승하는 시기라 외환 당국에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에는 단기 외채 비율이 단기적으로 70%대까지 올랐지만 당시는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지금은 미국과 통화 스와프가 없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정부와 한은이 말로만 안심하리고 할 것이 아니라 외환 보유액 중 4%에 그치는 현금 비율을 높이고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추진해서 방파제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