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6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27일 증시가 17개월 만에 가장 큰 폭(-3.5%)으로 주저앉은 원인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제공했다. 예상보다 더 강력한 긴축 신호를 보내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금리 인상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는데, 파월 의장은 향후 금리 인상 횟수와 인상 폭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커지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 시간으로 이날 새벽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감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여건이 조성된다고 가정한다면 3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단서를 달았지만, 3월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금리 인상 외에도 예정대로 오는 3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종료될 것이라고 했다. 또 시기를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양적 긴축(채권을 팔아 시중 자금을 회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지금까지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중 가장 매파적(긴축 선호 경향)이었다”고 평가했다.

◇연내 7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도 불거져

파월 의장은 이날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시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로 40년 만의 최고치였다. 파월은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가진 수단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 대비 3.5% 하락한 2614.49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 코스피가 2700선을 밑돈 것은 2020년 12월 3일(2696.22) 이후 1년 1개월 만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시장의 관심사는 금리 인상 횟수와 폭인데, 공격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파월 의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일곱 차례(3·5·6·7·9·11·12월) 남은 FOMC가 열릴 때마다 금리를 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부인하지 않았다. 금리 인상 폭을 통상적인 0.25%포인트의 2배인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추측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이런 답변들이 불확실성 해소를 기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파월의 모호한 답변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모든 FOMC 때마다 금리를 올리는 걸 배제하지 않았다”고 했다. 많으면 7번 금리를 올려 현재 0~0.25%인 기준금리가 연말에 1.75~2%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미 경제 전문 방송 CNBC 조사에 응한 이코노미스트 36명은 오는 2024년 초 금리가 2.4%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2~3%대 상승세로 출발했던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직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다우평균이 0.38%, S&P500은 0.15% 하락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도 0.1%포인트 상승(국채 가격 하락)한 1.86%까지 올랐다.

◇주요국보다 큰 국내 증시 하락

연준발 긴축 공포가 연초부터 전 세계 주식시장을 휩쓸면서 주요국 증시가 하락세를 보였지만, 국내 증시의 하락 폭은 더 큰 편이다. 올 들어 코스피는 12.2%, 코스닥은 17.9%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닛케이는 9.1%, 상하이 종합지수는 6.7% 내렸다.

연준의 강한 긴축 신호를 의식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성장주를 대거 팔고 있다. 카카오(9280억원), 네이버(7250억원), 카카오뱅크(5370억원) 등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의 미래 가치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보통 외국인들이 이런 주식들을 처분하면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사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상장과 동시에 국내 증시 시가총액 2위가 된 LG에너지솔루션 변수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이 주가를 떠받치지 못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관 투자자들이 LG에너지솔루션을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포트폴리오에 담기 위해 다른 대형주 비중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외국인들이 파는 주식을 받아줄 여력이 적었다”고 했다. 올 들어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횡령 사건을 비롯한 사고성 악재가 이어지면서 투자자의 심리가 악화된 측면도 있다. 증권가에선 2700선마저 무너진 코스피지수가 2500선까지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코스피가 큰 폭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등 경기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지수가 크게 반등하기보다는 현재 수준을 저점으로 하는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