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의 제로스테이션 매장 입구엔 커다란 분리 수거 쓰레기통 4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누구나 여기에 플라스틱 빈 병을 버릴 수 있고, 수거된 병은 재활용 공장으로 간다. 이 매장에서 화장품을 사면 ‘나이키’나 ‘이마트’ 등 엉뚱한 브랜드의 종이 쇼핑백에 넣어준다. 고객들이 기증한 쇼핑백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빈 병을 가져와 샴푸나 보디워시, 화장품 등을 담아 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있고, 매장 내 카페에서는 고객들이 기증한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낸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로마티카 체험 매장 내 리필 스테이션에서 김영균 대표가 자사 제품 리필을 해보고 있다. 그는 “공병 수거를 시작한 작년 8월부터 첫 한 달은 고작 10개를 수거했지만, 올해 8월에는 9930개를 수거했다”며 “이런 작은 한 걸음이 환경을 위한 선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영균(49) 아로마티카 대표는 지난주 가진 인터뷰에서 “기존 화장품은 예쁜 용기와 화려한 포장 등 ‘예쁜 쓰레기’를 배출하는 제품이었지만 화장품을 팔아 쓰레기를 만들었으면, 스스로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화장품을 나이키 쇼핑백에 넣어준다?

아로마티카는 2016년 국내 제조 브랜드 최초로 미국 친환경 화장품 인증인 ‘EWG 베리파이드’를 획득한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다. 토너·로션 같은 스킨케어와 샴푸·보디워시 등이 주력 제품이다. 유기농 원료를 조달하는 것부터 제품 생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친환경 화장품 1세대인 아로마티카가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화장품을 재활용 플라스틱과 재활용 유리에 담아 팔고 리필 스테이션을 만들면서부터다. 재활용업계와 환경 전문가들로부터 “친환경을 실천하기 어려운 화장품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자원 재활용을 제대로 하는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2004년 아로마티카를 창업하기 전 8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산업은행에서 3년간 근무했고, IT 회사에서 5년간 기술 영업과 기획을 담당했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도 대학생 때 가족이 있는 호주를 오가며 경험했던 아로마 세러피를 잊을 수 없어 결국 사표를 내고, 아로마티카를 세웠다”고 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화장품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해외에서 에센셜 오일이나 천연 화장수를 수입해서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당시엔 친환경 화장품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형 화장품 회사뿐 아니라 제조사도 김 대표가 수입하는 친환경 원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직접 원료 배합을 해가며 화장품을 개발해 지금의 아로마티카를 만들었다.

◇제품 98%에 재활용 용기 사용

김 대표가 아로마티카 제품을 처음 내놨을 때부터 신경을 썼던 것이 용기와 포장이었다. 그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제품이 플라스틱이나 과대 포장으로 쓰레기를 배출하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재활용이 쉬운 유리 소재를 사용했고 욕실에서 쓰는 제품은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깨닫고 결국 재활용 플라스틱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 개발에 나선 김 대표는 지난해 사용후 재활용(PCR·Post-Consumer Recycled) 용기를 사용한 제품을 처음 출시했다. 아로마티카는 전체 제품의 98%를 재활용 플라스틱과 재활용 유리 용기에 담아 생산한다. 그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용기 겉면에 약간 파인 듯한 자국이나 까만색 작은 점이 생기는 걸 소비자들이 싫어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면서 “이제는 소비자들이 먼저 용기가 없는 고체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아로마티카는 고객 요구에 따라 최근 고체 형태의 샴푸와 세제 등을 출시했다.

아로마티카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무한대로 순환하는 자원 순환 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김 대표는 “9월 중 수도권 13곳의 제로 웨이스트 매장에 모두 수거함을 설치해 투병 페트병과 제품 병을 모으겠다”면서 “아로마티카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상점 등에서도 수거함 설치 신청을 받아 자원 순환 거점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