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저녁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강남역 11·12번 출구에서 신논현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600m 거리는 한산했다. 점포 4개 중 1개꼴로 임대 팻말이 붙어있었다. 3~4층짜리 건물 전체를 임대로 내놓은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 팻말을 걸어놓지 않은 가게 중에서도 이미 임대로 내놨거나 곧 계약이 끝나고 임대로 나올 곳이 많다”고 했다. 이곳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송영대(69)씨는 “거리 두기 4단계 상향 직전에는 하루 15~20팀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요즘엔 하루 두 팀만 받는 날도 있다”고 했다. 송씨는 코로나 때문에 달마다 400만~500만원씩 적자를 보다가 4단계가 연장된 이번 달은 1500만원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송씨의 위층에 있는 참치집은 버티다 못해 이번 달에 폐업할 예정이다. 송씨는 “지금 상황이 석 달 더 계속되면, 이 거리에 남아있는 가게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서울 도심 주요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 내내 영업 부진과 매출 하락에 시달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고강도 방역 지침에 결정타를 맞은 것이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거리 두기 4단계 상향은 폐업 선고, 4단계 연장은 사형 선고”라는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다. 80만명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한국신용데이터 데이터포털에 따르면 4단계 강화 이후 종로구, 중구, 마포구, 서초구 등 수도권 주요 상권의 소상공인 오후 6시 이후 저녁 매출은 격상 이전보다 20%포인트 이상 떨어졌고, 코로나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코로나가 없었던 2019년 동기(同期) 대비 서울 종로구 자영업자 매출은 4단계 상향 직전인 7월 둘째 주에 28% 감소했다가, 셋째 주에 53% 줄었다. 서초구는 둘째 주에 33%, 셋째 주에 48% 감소했다. 두 지역 모두 직장인 위주의 오피스 타운이자 유흥가가 많은 곳이다.

신촌 식당 “종일 손님 한팀뿐”… 강남도 4층건물 통째 임대나와

지난 5일 오후 7시,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까지 펼쳐진 먹자골목.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한 삼겹살집 사장 김종철씨는 “오늘 점심부터 영업했는데 테이블 24개 중 딱 한 테이블만 받아서 매출이 1만5000원을 찍었다”며 허탈해했다. 코로나 직후에도 대학은 문을 닫았지만, 놀러 오는 20·30대와 주변 직장인들로 하루 20만~30만원 매출은 올렸다. 하지만 4단계 상향 이후엔 매출이 없다시피 하다. 결국 이 달 초 직원 다섯명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김씨 가게 주변에만 ‘임대’ 종이가 붙은 건물이 10여 곳이 넘었다. ‘거리 두기 4단계 상향으로 7월 27일부터 2주간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인 식당들은 ‘7월 27일’을 ‘8월 8일’로 고쳐 써놨다. 노점상 컨테이너 십여 곳도 두 곳 빼고 전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건물 전체가 텅 빈 곳도 있었다.

코로나 이전 대비 4단계 강화 전후 서울 상권 저녁시간 매출 감소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

“짧고 굵게 끝내겠다”던 거리 두기 4단계는 ‘길고 굵게’ 이어지면서 핵심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4단계로 강화된 거리 두기가 9일부터 또 2주간 연장이 됐다. 자영업자들은 42일간 사실상 저녁 영업을 못 하게 됐고, 특히 술집이나 노래방처럼 저녁 장사에만 의존하던 곳은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직장인이 많고 식당⋅술집 등이 집중적으로 몰린 중구⋅종로⋅서초⋅강남이나 학교 앞에 유흥가를 형성한 홍대⋅신촌은 코로나 이후 상권이 계속 흔들리다가 거리 두기 4단계 상향 이후에는 뿌리가 뽑힌 셈이다.

80만이 넘는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매출을 분석한 한국신용데이터 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코로나가 없었던 2019년 동기(同期)의 매출과 4단계 강화 전주인 7월 둘째 주와 강화 직후인 7월 셋째 주의 매출을 비교해 봤을 때 오피스타운이자 쇼핑지구인 중구는 둘째 주에 31% 떨어졌다가 셋째 주에 54% 감소했다. 홍대 입구와 먹자 골목이 많은 마포구도 둘째 주에 37% 감소했다가 셋째주에 52% 줄었다.

4단계가 지속되면서 자영업자들은 휴업 아니면 폐업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최대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지난 5일 하루 동안 100건이 넘는 ‘양도’ ‘매매’ ‘급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기간에 늘어난 빚 때문에 폐업을 선뜻 선택하지도 못한다. 종로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강모(55)씨는 매달 300만~4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나다가 최근 한 달간 적자가 700만원 넘게 늘어나면서 폐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빚이 1억 가까이 늘어났는데 폐업을 할 경우 이를 상환해야 하는 데다가 가족을 먹여살릴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 “거리 두기 4단계 효과 있나?” 의문

자영업자들이 포장이나 배달을 강화해 매출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일부 상권이나 업종에선 이마저도 힘들다. 한강 반포지구의 명당으로 불리던 한 편의점의 매출은 4단계 강화 이후 일주일 매출이 전주보다 30% 이상 줄었다. 평소엔 포장 손님이 너무 많아 주문이 밀리던 편의점 2층의 치킨집은 코로나 때도 평일에 하루 200만원, 주말엔 하루 400만~500만원의 매출이 나왔다. 거리 두기 4단계 이후엔 평일 하루 40만원, 주말 하루 60 만원 매출이면 잘 버는 편이다. 이 치킨집은 최근 월급을 못 준 아르바이트생을 결국 내보냈다.

거리 두기 4단계 4주 차가 거의 끝난 지난 7일 신규 확진자는 1729명으로 4단계로 강화가 시작된 지난달 12일(1150명)보다 오히려 579명이 늘었다. 홍대에서 바를 운영하다 최근 3주째 휴업 중인 김명근(42)씨는 “7월 들어 백신 접종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오히려 확진자만 늘었고, ‘짧고 굵게”라는 말을 믿고 2주를 기다렸다가 아예 가게 문을 한 달째 못 열게 됐다”며 “거리 두기 4단계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강남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일부 상권은 코로나 거리 두기가 1년 넘게 지속되는 바람에 나중에 회복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