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관이 아닌데요. 여성가족부로 가보셔야죠.”

아동 돌보미 중개 플랫폼 스타트업 ‘째깍악어’는 서비스에 등록한 돌봄 인력의 아동 학대 관련 이력 조회를 요청하기 위해 최근 서울의 한 경찰서를 찾았다가 퇴짜를 맞았다. 여성가족부에 문의했더니 “범죄 경력 조회는 경찰 소관”이라는 답이 돌아와 다시 다른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가부로 가보라”는 답변뿐이었다. 헛걸음한 횟수만 5번. 회사 관계자는 “궁여지책으로 돌보미들한테 아동 학대 방지 서약서를 받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만약 사고라도 나면 우리 서비스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처 떠넘기기와 이익 단체 반발에 부딪힌 스타트업들

기존에 없는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려는 스타트업들이 정부 부처 간 떠넘기기 행정과 기존 이익단체의 반발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잇따르는 노인·아동 학대, 무면허 렌터카 대여 같은 문제를 방지하겠다며 나선 플랫폼 업체들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관련 법안이 없다”거나 “다른 데로 가보라”며 핑퐁을 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업체들은 승승장구하며 공공 서비스까지 대체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정부와 이익단체 사이에 끼어 질식할 판”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부처 핑퐁에 난감한 혁신 서비스

노인 간병인 7400명이 등록돼 있는 노인 돌보미 중개 앱 ‘케어닥’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병인의 노인 학대 범죄 경력을 조회하려고 최근 행정안전부에 질의했지만 “개별 부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제도 전반을 고쳐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기요양기관이나 복지관에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에만 범죄 경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노인복지법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청, 청와대에도 문의했지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만 할 뿐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곳은 없었다.

렌터카 업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소 렌터카 업체 472곳이 가입한 국내 1위 렌터카 가격 비교 앱 ‘카모아’는 도로교통공단의 ‘운전면허 정보 자동 검증 시스템’ 이용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시스템은 렌터카 업체들이 차량 대여 때 면허증이 진짜인지 검증하는 포털 사이트지만, 전국 렌터카 사업자(1127곳)중 34.4%가 미가입 상태다. 카모아 관계자는 “영세 렌터카 업체들을 대신해 우리가 직접 검증하겠다며 서비스 이용을 신청했지만 중개 사업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비슷한 분야 업체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중국 30여 도시에서 서비스하는 렌터카 중개 플랫폼 셴지아는 중국 공안(경찰)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스마트폰 촬영만으로 운전면허를 검증한다. 미국 최대 간병인 알선 플랫폼 케어닷컴과 자녀 픽업 서비스 호프스킵드라이브도 돌봄 인력의 범죄 기록·약물 이력을 꼼꼼히 확인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제도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디라이트의 조원희 대표 변호사는 “우리 법·제도는 업체가 인력을 직접 채용한 경우만 범죄·면허 경력 조회를 허용하지만 플랫폼은 중개만 할 뿐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간 계약이 이뤄지는 구조라 현재의 법과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익단체 반발에 고민 깊어가는 스타트업 업계

의료·법조 플랫폼 시장에선 스타트업들이 이익단체의 반발로 서비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택시 업계 반발에 부딪혀 결국 영업을 접은 ‘타다’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성형·시술 후기 앱 강남언니는 ‘시술 전후 사진 후기’를 둘러싸고 “일반인의 후기는 불법 의료 광고”라는 의사협회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의협은 강남언니가 치료 전후 사진을 올리지 못하도록 아예 보건복지부와 함께 의료법 개정에 나섰다. 자칫 강남언니 앱을 아예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맞춤형 안경테를 제작하는 스타트업 딥아이도 정부를 설득해 안경테 온라인 판매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대한안경사협회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위기이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은 ‘로톡 광고 금지’ 규정을 만든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립하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기존 이익단체들의 입김이 워낙 강해 스타트업들은 속만 썩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