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늘려가는 탑텐 - 젊은 층이 몰리는 대표 상권 서울 홍대 입구에서 유니클로, 자라가 사라지고 국내 SPA 브랜드들이 들어섰다. 지난달 말 홍대입구에 탑텐 매장이 문을 열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국내 SPA(제조·유통을 함께 하는 중저가 의류 브랜드) 시장 3, 4 위였던 토종브랜드 탑텐과 스파오가 지난해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를 제치고 각각 2, 3위로 올라섰다. 부동의 1위 유니클로와의 격차도 줄였다. 2019년 유니클로의 매출은 탑텐의 세 배 가까이 됐지만, 지난해엔 탑텐보다 30% 정도 더 많은데 그쳤다. 유니클로의 매출이 2019년 9749억원에서 지난해 5746억원으로 줄어든 사이 탑텐의 매출은 3340억원에서 4300억원으로 늘었다. 패션업계에서는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탑텐이 유니클로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강남, 명동, 홍대 같은 주요 번화가의 간판 SPA 브랜드였던 유니클로와 자라 등이 주춤하는 사이, 토종 SPA브랜드들이 그 빈자리를 파고 들며 약진하고 있다. 탑텐과 스파오는 코로나19에도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고, 해외 브랜드에서 볼 수 없었던 협업 상품을 쏟아내며 성장세를 타고 있다. 패션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도 SPA 브랜드 전용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유니클로를 위협하는 토종 브랜드 대열에 가세했다.

무신사 오프라인 매장도 열풍 - 지난 5월 서울 홍대입구에 들어선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 1호점에도 고객들이 몰리며 개점 사흘 만에 방문객 6500명, 누적 매출 1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무신사

◇남들 다 매장 닫을 때 거꾸로 매장 열어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내 SPA 브랜드의 급성장 원동력은 오프라인 매장이었다. 일본 불매 운동 여파나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매출이 떨어진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해외 브랜드들이 매장을 접은 것과는 반대였다. 2019년 8월 전국 매장이 190개에 이르렀던 유니클로는 지난해 줄줄이 폐점해 2020년 연말 157개로 매장이 줄어들었다. 올해 1, 2월에도 13개 매장 문을 닫았다.

오프라인 매장을 가장 많이 늘린 데는 탑텐이다. 2016년에 134개에 불과하던 매장 수는 지난해 말 425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만 115개의 신규 점포를 열었고, 올해도 30여개를 늘릴 예정이다. 이랜드 계열의 스파오는 2019년 92개 매장에서 지난해 110개 매장으로 18개가 늘었다. 매장 수는 탑텐보다 적지만, 코엑스, 스타필드 안성 등 대형 매장 위주로 오픈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늘어나면서 서울 홍대 입구는 현재 국내 SPA 브랜드의 격전지가 됐다. 지난달 말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 국내 SPA 브랜드 탑텐이 문을 열었다. 한 달 전에는 근처에 무신사의 PB(자체 브랜드)만 판매하는 무신사 스탠다드 1호점이 생겼다. 2018년부터 홍대 입구에 매장을 운영한 스파오까지 더해져 세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에 있던 유니클로와 자라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매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 감소한 40조8000억원으로 추정되지만, 국내 SPA 3사는 이런 추세를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탑텐의 매출은 전년에 비해 30%가 늘었고, 올해 1분기 매출은 1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스파오의 지난해 매출은 33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00억원 늘었다. 이들보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무신사 스탠다드의 지난해 매출은 1100억원으로, 전년(630억원)보다 76%나 성장했다.

◇일본 불매에 반사 이익, 코로나 땐 초저가

국내 SPA브랜드의 급성장은 2019년 일어난 일본 불매 운동으로 반사이익을 본 측면도 있다. 당시 ‘노재팬’ 때문에 유니클로가 타격을 입었을 때 탑텐 측은 “한국인에게 일본 내복 안 입히겠다”는 애국 마케팅을 펼치면서 발열 내의 ‘온에어’를 증정해 인기를 얻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일본 브랜드 대체재 목록에 탑텐, 스파오, 무신사 스탠다드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이들은 ‘초저가’라는 경쟁력도 갖고 있다. 탑텐·스파오 주요 의류 제품은 1만~2만원대로 3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유니클로보다 싼 편이다. 5일 현재 탑텐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여성 바지가 대부분 2만원을 안 넘는 데 반해, 유니클로의 여성 바지는 3만원대다. 국내 SPA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불황으로 명품 아니면 초저가 제품만 잘 팔리는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국내 SPA 브랜드가 가진 가격 경쟁력의 매력이 극대화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