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캐리커처와 ‘구단주’ 로고가 새겨진 맥주, 소주, 와인 사진을 올렸다. “어디서 많이 본 인간인데 누구지” “아 진짜 이 X은 안 끼는 데가 없네”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신세계 측은 “구단주 술은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했지만 정 부회장의 이 게시물엔 ‘좋아요’가 5만5000개, 댓글이 2000개 가까이 달릴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 게시물을 통해 정 부회장과 신세계는 출시도 안 된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높이고 이들의 반응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그룹의 편의점 이마트24가 프로야구단 SSG랜더스의 이름을 내건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NS에 올린 '구단주 맥주' 시안./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정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업이나 개인적 관심을 담은 사진과 글을 올리며 인터넷상에 큰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66만5000만명으로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많은 데다 이를 이미지 제고와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치게 논란이 될 만한 게시물도 적지 않아 경영 리스크(위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시물 하나 올리자 검색 11배 늘어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활용법은 여타 기업이나 경영인의 것과 좀 다르다. 그는 직접적인 제품·브랜드 홍보나 업무가 아니라 음식을 먹거나 요리하고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인 모습을 올린다. 이마트를 운영하고 식음료 사업을 하는 신세계 입장에선 ‘오너가 관련 사업을 좋아하고 잘 알고 있다’는 평판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일명 오너 마케팅이자 기업 PI(President Identity ·최고 경영자 이미지 관리) 마케팅이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은 광고 역할도 톡톡히 한다. 지난해 정 부회장이 “내가 만든 칠리새우보다는 별로지만 먹을 만함”이라는 글과 함께 ‘피코크 진진칠리새우’ 제품 사진을 공개했다. 그날 해당 제품의 네이버 검색량은 전날 대비 11배 이상 늘었고, 판매도 급증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게시물은 인터넷에서 계속 공유되고 기사로 재생산되면서 어떤 광고보다 더 많이 노출된다”고 했다.

◇마케팅 효과 크지만 논란도

정 부회장의 소셜미디어 이력은 2010년 트위터부터 시작됐다. 당시 트위터에서 ‘이마트 피자’ 설전을 벌이고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미니 버스를 탄다는 글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이 계정이 해킹을 당하면서 트위터를 접었다. 2015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이마트 PB(자체 브랜드) 제품을 홍보했고, 스타필드나 전자제품 판매점인 일렉트로마트 개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페이스북을 보면 신세계의 사업 방향이 보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 게시물은 신세계 내부 마케팅팀의 손을 한 차례 거쳐서 나와 재미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2016년 이후 페이스북을 중단했다.

①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구단주 맥주. ②정 부회장과 닮은 ‘부캐’ 제이릴라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정 부회장. ③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엔 요리, 식당, 자녀 사진 등 일상적인 모습이 주로 올라온다. ④캐릭터 ‘용지니어스’를 새긴 티셔츠 차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담은 인스타그램 게시물. /연합뉴스·인스타그램

정 부회장의 개인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인스타그램 활동이다. 특히 부캐(부차적인 캐릭터의 줄임말)까지 만들어 오너, 경영자, 프로야구단 구단주 등 자신의 정체성을 앞세운 ‘정용진 유니버스(세계관)’ 구축을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용지니어스’ ‘제이릴라’ 등 스스로를 본뜬 캐릭터를 만들었다. 제이릴라는 정 부회장과 비슷하게 생긴 고릴라로 정 부회장을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구단주로서 우수 선수에게 ‘용진이형상’을 주거나 ‘구단주’라는 술을 구상하는 걸 인스타그램을 통해 드러냈다.

정 부회장의 소셜미디어 활동은 득만큼 실도 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고기·가재 등 식자재 사진과 함께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댓글을 달아,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문구가 논란이 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세월호 희생자 방명록 글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우리 홍보실장이 오해받을 일하지 말란다”라는 글을 올린 뒤 관련 게시물들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