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복지·친환경 계란으로 유명한 미국 기업 바이털 팜은 지난달 20일 소비자들에게 집단소송을 당했다. 이 회사는 닭을 학대하지 않고 키워서 낳은 계란을 판다고 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8월 상장까지 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13억달러(약 1조4400억원). 바이털 팜을 고소한 소비자들은 “바이털 팜이 닭에게 사료가 아닌 풀을 먹인다는 점 빼고는 공장형 양계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자료가 나왔다”며 “알을 낳지 않는 수탉은 도살하고 좁은 양계장에서 닭들이 서로 쪼지 못하도록 부리를 깎아냈다”고 주장했다. 친환경 계란으로 홍보해서 일반 계란보다 훨씬 비싸게 팔고 사업을 확장해 소비자와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업들이 친환경 콘셉트의 제품과 이미지 캠페인을 앞다퉈 쏟아내고 금융권에선 녹색 채권까지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환경 친화적이라는 홍보와 달리, 효과를 과장하거나 아예 거짓으로 기업 이미지를 각색하는 사례가 늘면서 ‘녹색 거짓말,’ 일명 ‘그린워싱(green washing)’ 주의보가 내려졌다.

◇친환경 생색내기 주의해야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이 그린 워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그린워싱 칠거지악(seven sins of green washing)’에는 ‘상충된 효과 숨기기’ ‘허위 인증 사용’ ‘근거 없는 주장’ ‘거짓말’ 등이 포함됐다. 식음료 다국적기업인 네슬레의 캡슐커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8t에 달하는 알루미늄 용기를 사용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알루미늄을 위해 여러 재활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알루미늄 용기의 재활용률을 100%까지 늘리겠다고 했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29%에 그쳤다. 코카콜라도 2008년에 2015년까지 용기의 25%를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2019년까지 그 비율은 9%밖에 안됐다.

국내에서도 친환경 제품이나 캠페인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그린워싱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국내 한 화장품 회사가 지난해 내놓은 ‘페이퍼’ 용기는 종이로 만들어진 겉면을 벗겨내면 그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있었다. 회사 측은 “종이를 써서 기존 용기보다 플라스틱 사용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했지만 소비자들은 “‘종이병’이란 모호한 콘셉트로 구매자를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한 백화점이 선보인 리필 서비스는 ‘상충효과 숨기기’에 해당된다. 리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플라스틱 용기 사용은 줄일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리필 제품을 뉴질랜드에서 수입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배나 비행기로 제품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 배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적 제재도 안 받는데...기준 모호

금융권에서는 친환경을 표방한 기업들이 발행하는 녹색채권이나 녹색펀드의 그린워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지속가능한 금융 상품들이 알고 보면 그린워싱으로 만연하다”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ESG펀드 20개 중 6곳은 미국 최대 정유사인 엑손에 투자했고, 2곳은 아람코, 1곳은 중국 석탄 채굴 회사 지분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녹색채권은 105억달러(약 11조7000억원) 규모로 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둘째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녹색채권을 발행한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굴뚝산업에 속한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기업의 친환경 활동을 감독하고 그린워싱을 밝혀낼 기준이 아직 모호하다는 것이다. EU는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업종에 따라 정의하고 판별하는 분류 체계인 ‘택소노미’ 초안을 지난해 마련했고 2022년부터 사용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마련하고 하반기 중 금융권에 시범 적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린워싱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 80년대 말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트밸드가 피지섬에 갔다가 섬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호텔의 객실에 ‘환경보호를 위해 타월을 재사용해달라’라는 안내문이 있는 걸 보고 만들어냈다. 영화나 연극에서 흑인 역할을 분장한 백인이 맡아 흑인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을 ‘화이트 워싱’이라고 부르는 데서 따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