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36곳의 작년 당기순이익이 적자 60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 공시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일 공공 기관 경영 정보 사이트인 알리오 공시에 따르면, 2016년 9조원에 달했던 공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2017년(4조200억원), 2018년(2조원), 2019년(1조2000억원) 3년 연속 쪼그라들었고, 결국 지난해에는 적자를 기록했다. 36곳 가운데 절반인 18곳이 적자였다.

철도공사, 석탄공사 등 5년 연속 적자인 공기업 외에도 마사회, 인천국제공항공사, 가스공사 등 11곳이 코로나 사태와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2016년엔 적자인 공기업이 8곳이었는데, 두 배 넘게 늘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공기업들의 부채는 397조9000억원으로 늘어나 400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마사회 등은 코로나 사태로 여행‧레저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고, 가스공사, 서부발전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국제 유가 하락 등이 원인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이 여전하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떨어진 것만으로 공기업들의 적자를 설명하긴 어렵다”며 “매출이 줄었는데 그에 맞춰 비용을 줄이지 못한 것은 명백한 경영상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공기업은 340개에 달하는 공공 기관 가운데 자체 수입 비율이 절반 이상이라 기본적으로 공공성과 함께 수익성도 주된 경영상 지표가 되는 곳으로 기재부가 매년 지정한다. 시장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등 비상 경영 체제가 가동됐어야 할 상황인데도 공기업 기관장과 감사, 일반 직원 등 임직원 평균 연봉은 삭감되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졌다. 전년도 실적에 따라 정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 교수는 “정부의 소홀한 관리 감독도 문제”라며 “낙하산 인사가 끊이질 않는 상황은 공기업 경영 난맥의 큰 원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기업 실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들이 적자를 낸 원인으로 코로나 사태와 저유가 등을 지목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기관장 연봉이 2억원대로 높아지고, 직원 숫자가 4년간 2만명 넘게 불어나는 등 몸집은 더 커졌다. 민간 기업이라면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할 임원들이 더 두꺼워진 월급 봉투를 받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방만 경영이 근본 문제”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 등 외부 경영 환경 변화가 컸지만, 비상 경영 체제 가동 등으로 절박하게 대응한 곳이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인 공공 기관과 달리 민간 기업의 경영 원리를 도입하자는, 공기업 취지에 맞지 않는 방만한 경영이 실적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공기업 복지 축소 등 허리띠 졸라매기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작년 공기업 적자는 코로나 사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민간 기업들은 실적 악화가 예상되자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임금 등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에 나섰다”며 “공기업이 이런 기본적인 대응조차 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코로나 이전부터 복리후생비와 인건비 등 각종 지출이 늘었지만, 코로나를 맞아 이를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공기업 부채 400조 시대

성태윤 교수는 “공기업 수익성 악화는 결국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 재무 구조 악화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공기업들의 부채는 작년 397조9000억원으로 2019년(388조1000억원)보다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공시가 시작된 2016년(363조원) 이후 2017년 364조1000억원, 2018년 371조200억원으로 부채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도로와 전력 등 필수 공공 서비스 인프라 투자 금액까지 부채로 잡힌 것도 영향을 줬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이 부담해야 할 ‘그림자 부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심성 공약을 위한 각종 정책 사업을 공기업에 맡기고 돈을 빌리게끔 하는데, 향후 뒷감당은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달 20일 낸 보고서에서 “공기업 부채는 유사시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어 사실상 정부 부채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정부 부채와는 달리 관리와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공기업은 정부의 암묵적 지급 보증을 무기로 부채의 50% 이상을 공사채 발행으로 일으키고 있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했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28일 “한국 대형 공기업의 높은 부채는 재정 건전성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적 나아졌다”는 정부

정부는 공기업 36곳의 적자는 외면하고, 준정부 기관·기타 공공 기관 등 304곳을 합친 전체 공공 기관의 지난해 경영 실적이 2019년보다 호전됐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 기관 경영 실적은 지난달 30일 알리오에 공시됐는데 기재부는 이날 “공공 기관들이 전년 대비 4조5000억원 증가한 5조3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공기업은 적자였고, 자체 수익 사업보다 정부 지원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장학재단, 예금보험공사 등 준정부 기관(95곳)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출입은행 등 기타 공공 기관(209곳)이 흑자를 냈기 때문이라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준정부 기관은 2019년 5000억원 적자에서 작년 3조1000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기타 공공 기관 흑자 규모는 2019년 1000억원에서 작년 2조8000억원으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