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총생산과 국가 부채

지난해 국가 부채가 1985조원으로 불어나면서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1924조원)보다 커졌다. 세계 최저 출산율,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 악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6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2020회계연도 국가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부채가 241조6000억원 늘어나 1985조3000억원에 달했다. 국가 부채는 정부가 갚아야 할 시기가 정해진 빚(확정부채)에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등을 환산한 금액(비확정부채) 등을 더한 것이다.

세금 일자리 확충 등 기존의 복지 확대 추세에다 막대한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지난해 4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정부 지출이 늘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확정부채가 111조6000억원 늘었고, 고령화 등으로 연금 지급액 증가가 예상되면서 비확정부채도 130조원 늘었다.

비확정부채를 제외한 국가 채무는 84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23조7000억원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660조원 정도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나랏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데 현 정부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인당 국가채무, 文정부서 421만원 늘어… 정부는 “양호한 수준”

지난해 나라 살림은 각종 ‘신기록’을 쏟아냈다. 국가 채무 규모, 1인당 국가 채무, 재정 적자 규모 등 모든 지표가 사상 최악으로 나왔다. 코로나 사태라는 긴급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내년에도 확장 재정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1인당 국가 채무 1634만원, 9년 만에 2배

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 회계연도 국가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채무 규모는 846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중앙정부 채무(819조2000억원)에 지방정부 채무(27조7000억원)를 더한 것이다. 국가가 암묵적으로 보증을 서는 공공기관 채무 등은 계산되지 않은 수치다. 국가 채무는 1년 전보다 120조2000억원 늘었다. 한 해 사이에 나랏빚이 이 정도로 늘어난 적이 없다.

국무회의 들어서는 홍남기 부총리 -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6일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 입장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1985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했다. /연합뉴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국가 채무는 1634만원에 달한다. 국가 채무를 작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로 나눠 계산한 값이다. 국민 1인당 국가 채무는 1년 전(1395만원)보다 200만원 넘게 늘어났다. 1인당 국가 채무는 지난 2011년 829만원에서 9년 사이에 2배 규모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은 35% 늘어났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3.9%였다. 앞서 2019년에 국가 채무 비율 40%를 놓고 ‘건전 재정의 마지노선’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미 그 수준을 훌쩍 넘긴 것이다.

작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71조2000억원 적자였다. 아직은 지급액보다 걷히는 돈이 더 많은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빼고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12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둘 다 사상 최대 규모다.

기재부는 재정 적자가 불어난 데 대해 “코로나 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인 지난 2019년부터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통합재정수지는 2016~2018년 흑자를 기록하다 이미 2019년에 적자로 돌아섰다. 관리재정수지 역시 2016~2018년에는 전년 대비 적자가 줄었지만, 2019년 다시 적자 폭이 커진 바 있다.

앞으로도 국가 채무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올해 벌써 한 차례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편성했다. 국가 채무는 965조9000억원으로 GDP 대비 48.2%까지 불어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통합재정수지 역시 89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나랏빚 급속도로 늘어도 “아직 괜찮다”는 정부

국가 채무가 급속도로 늘어나는데도 정부는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 않다. 기재부는 “(국제 비교 기준인) 일반정부부채는 지난 2019년 4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0%보다 크게 양호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시적 채무 증가를 감내하더라도 확장 재정을 통해 위기를 조기 극복하고 경제 역동성을 확보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결코 안심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국가 채무 규모 자체는 아직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지만, 증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연평균 11.1% 늘었다. OECD 37국 중 여섯째로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건 터키·라트비아·칠레·룩셈부르크·에스토니아뿐이었다.

앞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복지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다.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 도달 시점을 기준으로 재정 건전성을 비교해보면, 독일(14.1%), 프랑스(32.8%) 등이 우리나라(40.8%)보다 더 국가 채무 비율이 낮았다. 또 우리나라는 국채 발행을 마음껏 늘리기 어려운 비(非)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 상황에서 확장 재정을 펼친 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라면서 “코로나 이후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채무와 국가부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진 빚 중에서 상환 시점과 금액이 정해진 것이 국가채무, 그렇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 것이 국가부채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지급을 위한 연금충당부채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