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 물품거래 업체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초 입법 예고한 전자상거래 개정안 때문에 국내 온라인 중고 거래 업계가 비상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개인 간 거래에서 분쟁이 생기면 중개업체(플랫폼)가 이용자의 이름·주소·전화번호를 제공해야 한다. 업계는 “개인 정보 유출을 넘어 스토킹·사적 보복을 조장하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2일 공정위 주최 업계 간담회에서도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 측은 “이런 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중고 거래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개정안을 재검토해달라”고 호소했다. 월 이용자가 1400만명에 이르는 당근마켓은 사용자 간 직거래로 매매가 성사되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어느 사용자가 개인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는 쇼핑몰을 이용하겠느냐”면서 “거래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상대방을 찾아가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그때는 누가 책임지느냐”라고 반문했다.

정부·여당이 IT 플랫폼 규제 법안을 쏟아내면서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상생협력법 개정안·플랫폼종사자보호법 등 현재 입법 추진 중인 규제 법안만 10여개가 넘는다. ‘대형 IT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고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일리가 있지만 자칫 갓 태어난 혁신 산업 생태계를 완전히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 한 스타트업 임원은 “당근마켓은 분쟁이 생기면 회사 측이 중재를 하는 방안도 있다”면서 “거래 당사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은 모든 기업을 통제하려는 중국식 규제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쏟아지는 플랫폼 규제법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 법안은 특정 기업의 서비스를 타깃으로 하는 규제라는 의미에서 ‘B마트 규제법’이라 불린다.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2019년 선보인 B마트는 생필품·식품을 30분 안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서비스 지역도 지난해 서울·인천 일부 지역에서 올해 서울·인천·수원·성남·일산·부천 등으로 확대됐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물류센터도 같은 기간 15곳에서 31곳으로 늘었다. 경쟁앱 요기요도 ‘요마트’를 지난해 내놓고 서비스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B마트 규제법의 명분은 ‘골목 상권 지키기’다. 지역별로 물류창고를 설치해 판매·배송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영업 시간과 판매 품목을 지역 소상공인과 협의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당초 쿠팡·마켓컬리 등 새벽 배송을 하는 업체 전체를 규제하는 법안을 준비했지만, 업계 반발이 심하자 배달 업계로 한정해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가정이 대형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는데 이런 규제가 소상공인 보호에 무슨 실효성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성형수술 및 미용시술 후기와 병원 정보 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들도 의료광고 심의를 강화하려는 의료법 개정 움직임에 “신생 서비스를 막기 위한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바비톡·강남언니 등 성형 후기 앱은 성형 후기와 함께 병원 광고 및 이벤트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바비톡과 강남언니는 각각 가입자 360만명, 280만명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입법을 추진하는 정치권과 의료계는 “신문·잡지·옥외광고에 하는 의료광고처럼 자율심의기구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의료계 자율심의기구 안을 따르면 치료 전후 사진을 올리지 못해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배달 라이더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배달 대행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발의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은 종사자와 계약 시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을 해지하려면 15일 이전에 내용과 이유를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5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안대로라면 배달 수요가 급증하거나 급감할 때 배달 라이더 인력을 탄력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배달대행 업계 관계자는 “20만명에 달하는 배달 라이더는 수시로 업체를 옮겨가며 일한다”며 “서면 계약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비효율은 스타트업에는 부담”이라고 했다.

이 법안들에 대한 소비자 여론도 부정적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로 구성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지난달 22일 실시한 온라인 플랫폼 배송 서비스 규제에 관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규제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1.4%였다. 찬성은 26.2%에 불과했다. 규제를 반대한 소비자 47.6%는 ‘소비자 선택권 박탈로 편익이 저해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온라인 플랫폼이 지역 소상공인들의 판로 확대에 기여하고 물류산업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다양한 순기능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