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인 포드는 미국 테네시 공장의 전기 픽업트럭 생산 시점을 1년, 캐나다 온타리오 공장의 대형 전기 SUV 생산 시점을 2년씩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수요가 주춤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신 포드는 하이브리드 생산을 늘리겠다고 했다. 작년 말부터 소형 픽업트럭 매버릭 하이브리드를 만드는 멕시코 공장 근무 방식을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꿔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 대표 제품인 F-150 트럭도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줄이고 하이브리드는 20% 늘리기로 했다. 올해 전체 하이브리드 판매를 전년 대비 40%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포드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일제히 하이브리드 개발·생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금의 전기차 캐즘(Chasm·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을 하이브리드로 수익을 내면서 버티고, 전기차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지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 기술이 없는 기업이 무리해서 이 분야에 뛰어들다가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모두 어중간한 수준에 머물 수 있어, 후발 주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픽=김성규

◇전기차 늦추고 하이브리드 늘리고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국 자동차 시장의 올 1분기(1~3월) 화두는 하이브리드였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인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1분기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5% 늘었는데, 하이브리드차는 45% 급증했다. 미국 1위인 GM(제너럴모터스)은 1분기 판매량이 작년보다 1.5% 줄어든 59만대였다. 반면 2위 도요타는 70% 늘어난 약 56만대로 GM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하이브리드였다. GM은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바로 넘어가는 전략을 쓰고 있어 하이브리드가 없는 반면, 도요타는 1분기 하이브리드만 20만6850대를 팔았다.

최근 GM은 전기차 공백을 메우려 뒤늦게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생산이 이뤄질 때까지 당분간 고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1분기 판매가 작년 대비 17% 늘어난 혼다 역시 SUV CR-V와 세단 어코드 등의 절반 이상이 하이브리드였다. 폴크스바겐그룹에 속한 고급 브랜드 벤틀리는 지난달 브랜드 첫 전기차를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1년 이상 미루기로 했다. 대신 벤틀리는 지금보다 더 고성능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만드는 데 추가 투자를 할 방침이다. BMW와 닛산 등도 하이브리드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 내수·수출도 하이브리드 대세

세계 자동차 시장 기류가 달라지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도 한층 더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변화할 조짐이다. 전기차 투자를 늘리면서 선두 주자인 테슬라 추격에 나서던 현대차·기아가 최근 시장 상황에 맞춰 전략을 일부 조정하고 있다. 도요타와 더불어 하이브리드 기술을 가장 오래 갈고닦아온 현대차·기아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원래는 내년부터 100% 전기차만 출시하기로 했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에 하이브리드 모델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전략형 기아 텔루라이드 2세대 모델에도 하이브리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아도 현재 6종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2026년 8종, 2028년 9종으로 확대, 차례대로 북미·유럽 시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수출도 하이브리드가 효자 모델이 됐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분기 하이브리드 수출은 8만423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늘었고 전기차를 앞질렀다. 특히 3월에는 하이브리드 수출액이 8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내수에서도 1분기 1~3위인 쏘렌토, 싼타페, 카니발 모두 판매된 신차 중 하이브리드 비율이 50%를 웃돈다. 쏘렌토는 약 74%가 하이브리드다. 이런 점을 감안해 현대차는 내년 초 준대형 팰리세이드 풀체인지(완전 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하이브리드를 처음으로 추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