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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수입차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사고 시 보험료의 과도한 할증이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국내 차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완화될 전망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입차가 누적 등록 300만대를 돌파했고 점유율도 12.5%로 10년 새 3배 이상이 됐다. 이런 수입차의 급격한 확장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산차는 수입차와 판매 가격이 같아도 구매자의 세금 부담이 더 큰 경우가 있어 업계 불만이 컸다. 포르셰·벤틀리·페라리 등 억대 수입차의 잘못으로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피해를 본 국산차의 보험료가 할증되는 것도 대표적인 ‘국산차 역차별’로 꼽혔다. 하지만 7월부터 정부는 국산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종전보다 낮추고, 고가 차량의 잘못이 큰 사고에서 피해 차는 보험료 할증을 자제하기로 했다.

◇그랜저 54만원 세 부담 줄어든다

국세청은 오는 7월 1일 출고되는 국산차부터 차량에 대한 과세표준(이하 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을 종전보다 18% 일괄적으로 낮춘다고 7일 밝혔다. 국산차의 과표는 공장 출고 가격인데, 현재 출고가가 4200만원인 현대차 신형 그랜저의 경우 과표가 3444만원으로 낮아진다. 소비자가 과표의 5%를 내야 하는 개별소비세는 210만원에서 172만원으로 줄어든다. 또 개별소비세와 연동해 매겨지던 부가가치세 등도 함께 줄면서 그랜저 구매자가 내야 하는 세금은 종전보다 54만원 줄어든다. 국세청은 현재 판매 중인 기아 쏘렌토는 52만원, 르노 XM3는 30만원,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는 33만원, KG 토레스는 41만원 세금이 줄어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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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는 개별소비세율 5%를 가정한 것이다. 6월 말까지는 자동차 개소세 인하 조치(세율 3.5%)가 적용되고 있다. 개소세 탄력세율이 연장된다면, 그랜저의 과세표준 하향에 따른 세 부담 감소는 39만원가량이다. 지난 2018년 말 종료 예정이던 개소세 인하 조치는 6개월 단위로 계속 연장되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세수(稅收) 부족을 고민하고 있지만, 국산차에 붙는 세금을 깎아주기로 결정한 것은, 국산차와 수입차가 과세표준이 달라 국산차가 한국에서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이 5~6년 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다.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는 수입 신고가격이 과표다. 국산차는 공장 출고가격에 각종 유통비용과 이윤이 포함되는데, 수입차는 이를 제외한 원가 수준으로 신고한 후 세금을 내기 때문에 과표가 낮아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거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 소비자 판매 가격이 6000만원 안팎으로 비슷한데, 국산차의 과표는 5633만원이고 수입차는 4080만원인 사례도 있었다. 이 경우 국산차 구입자가 세금을 102만원 더 내야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수입차가 원가를 크게 낮춰서 국내에 차를 들여와 세금을 적게 낸 후, 차를 비싸게 팔아 남긴 이익을 해외 본사로 배당해 돌려보낸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세청 등이 수입원가 등 수입차 내부 자료를 요구하거나 수입차 개소세를 높일 경우 통상마찰이 생길 수 있어 국산차 과표를 낮추는 쪽으로 형평을 맞춘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수입차 업계는 “생산·판매를 함께하는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의 경우 수입은 각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하고, 판매는 딜러가 하고 있어 원가에 어떤 비용을 붙일지는 딜러 몫이라 일률적으로 세금을 매기면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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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수입차 잘못 크면 피해차 보험 할증 유예

금융감독원은 이날 7월 1일부터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해, 외제차같이 고가 차량 잘못으로 사고가 났는데도 책임이 적은 다른 차주의 보험료가 오히려 올라가는 사례를 방지하는 대책을 내놨다. 보통 고가 수입차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산차 간 교통사고에서 이런 불평등 문제가 불거졌다.

지금은 차주의 과실 정도와 무관하게 상대에게 배상한 금액이 보험사가 정한 일정 기준을 넘기면 무조건 보험료가 오른다. 예를 들어 수입차 과실이 90%인 교통사고가 나서 수입차는 수리비가 3000만원, 국산차는 100만원 나오는 손해가 생겼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수입차측 보험사가 국산차 손해액 100만원의 90%인 90만원을, 국산차측 보험사가 3000만원의 10%인 300만원을 배상하게 된다. 이때 보험사의 할증 기준이 배상액 200만원이라면 국산차 차주는 과실이 10%밖에 되지 않는데도 보험료가 오르고 수입차 차주는 보험료가 유지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런 식으로 고가 차량의 비싼 수리비가 피해 차주의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 대안을 마련했다. 사고 책임이 큰 차량에 별도의 할증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1등급 할증하고, 피해 차는 할증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다만 이 개선안은 고가 차량 과실 비율이 50%가 넘는 교통사고 가운데, 저가 차량 차주가 배상한 금액이 200만원을 넘으면서 고가 가해 차량 차주 배상금액의 3배를 초과하는 경우 적용된다. 이때 고가 차량은 신차 가격이 8000만원이 넘고 건당 수리비가 평균의 120%인 경우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