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가 30일(현지 시각) ‘마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대표 전기차 ‘머스탱 마하E’ 가격을 최대 8.8% 인하했다. 테슬라가 지난 17일 미국 IRA(인플레감축법)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에 맞춰 주요 모델 가격을 최대 20% 인하하자 맞대응한 것이다. 마린 자자 포드 전기차 최고고객책임자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마하E의 가격은 최대 5900달러(약 726만원) 인하됐으며, 모든 모델이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동차 업계에선 테슬라가 쏘아 올린 가격 전쟁에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참전하기 시작하면서 초기 전기차 시장 선점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제 ‘수익률’보단 ‘파이 선점’

코로나와 러·우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된 지난 3년간 자동차 업계는 신차 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려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신차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런 전략은 완성차 업계에 역대급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미 연준의 금리 인상과 함께 찾아온 글로벌 자동차 수요 감소는 콧대 높던 테슬라도 멈춰 세웠다. 테슬라는 상하이 공장 생산 능력을 100만대까지 늘린 상황에서 주문 잔고가 급감하자 작년 말부터 가격 인하를 단행해 왔다. 이제 ‘높은 수익률’보다는 ‘더 큰 파이’를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주요 업체들이 참전하고 있다. ‘대륙의 테슬라’로 불리는 중국 샤오펑(Xpeng)은 한번에 700만~1000만원이 저렴해진 테슬라로 고객들이 대거 이동하는 모습을 본 뒤, 지난 17일 서둘러 주요 모델 가격을 최대 12.5% 인하했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샤오펑이 아직 조 단위 영업 손실을 보고 있지만 가격 인하 이후 주가가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 향후 고객 인도 물량이 늘어나 점유율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이 밖에 중국 화웨이가 전기차 업체 싸이리스와 공동개발한 SUV 브랜드 ‘아이토’도 주요 모델 가격을 최대 10% 인하했다. 상하이자동차는 고객 이탈 조짐이 보이자 수백만원 상당의 서비스로 고객을 달래고 있다.

세계 전기차 랭킹 1위 업체의 가격 인하는 다른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GM은 캐딜락 리릭 등 주요 전기차가 SUV로 분류되지 않아 보조금 대상에서 탈락하자 미국 재무부를 상대로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로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 로비가 통하지 않을 경우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딜러들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전달 대비 9.8% 높인 1076달러를 딜러에게 지급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향후 시장 변화에 따라 딜러 인센티브를 탄력적으로 적용해 판매를 최대한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업계도 가격 압박… 고객은 불만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 업계에도 가격 인하 압박이 심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증권가에선 테슬라가 LG에너지솔루션(엔솔)에 배터리 발주 물량을 크게 줄였다는 ‘오더 컷’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4.7% 급락했다가 3일 만에 주가가 3% 반등하는 일이 있었다. 배터리 업계에선 테슬라가 LG에 단가 인하를 압박하며 주문 물량을 대폭 줄였는데, LG가 테슬라와 협상을 통해 수주 물량을 회복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진짜 치킨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지난 2020년 출시 계획을 밝힌 적이 있는 2만5000달러(약 3000만원) 수준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2가 실제 등장하는 날, 진짜 치킨게임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가격의 변동성이 심해지자, 제품을 비싼 값에 주고 산 고객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테슬라를 비싸게 산 고객 200여 명이 테슬라 매장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며 배상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덴마크 공영방송 TV2는 테슬라가 가격 인하 직전 차를 구매한 고객과의 분쟁이 늘고 있으며 환불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