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 감축법이 16일(현지 시각) 즉시 발효되고 북미 밖에서 제조된 전기차들이 보조금 리스트에서 제외되자 미국 전기차 시장 선점을 노리던 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이날 미 에너지부가 발표한 보조금 리스트에 포함된 유럽 제조업체의 전기차는 벤츠 EQS 1종에 불과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주력으로 밀고 있는 ID.4나 아우디의 e-트론 시리즈, 스웨덴 볼보의 최신 전기차 C40리차지, 영국 재규어의 I페이스 같은 주요 모델들이 대거 탈락했다.

폭스바겐 그룹의 전기 자동차 모델들이 츠비카우에 있는 현지 생산 공장에 주차되어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앞서 EU 집행위의 미리엄 가르시아 대변인은 11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해외 자동차 회사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상충한다”며 강하게 비난했지만, 바이든 정부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폴크스바겐, 벤츠, BMW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폴크스바겐그룹 측은 “우리 그룹에선 아우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1종만 보조금을 받게 된다”며 “우리 사업과 고객에게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브랜드별로 누적 판매 20만대까지만 보조금을 지급하던 한도를 폐지한 것도 유럽 업체에 불리한 안이라는 우려가 크다. 유럽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나 GM은 이미 20만대를 넘어 보조금을 못 받는 상황이지만, 내년부턴 무한대로 받게 된다”며 “전기차 전환이 빠르고 판매량이 큰 미국 브랜드들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보조금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말부터 미국 테네시주 공장에서 전기차 모델 ‘ID4′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본래 이 차량은 독일 츠비카우 공장에서 생산했는데, 미국에서도 동시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3월 향후 5년간 북미에 71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투자해 60만대 생산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전기차 공급망을 시급히 재편하는 노력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